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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리컨설팅 정두철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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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맛이 밴 조청, 옛 방식 그대로 담근 간장과 된장, 구슬땀으로 일궈낸 갯벌 천일염 등은 ‘한국의 맛’을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특산품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오랜 세월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온 명인들이 있다. 다리컨설팅 정두철(44) 대표는 전국 각지에서 숨은 명인들을 찾아낸다. 이들이 만든 특산품을 세상에 알리는 ‘명인명촌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강원도 정선에서 지낼 때 지인들에게 옥수수를 선물한 적이 있어요. 아는 분께 선물용으로 옥수수를 좀 구한다고 말씀드렸다가 옥수수가 맛있는 시기는 1년 중 딱 1주일 정도라는 얘기를 들었죠. 그 때가 지나면 옥수수의 심이 약해져 맛이 덜하다고요.” 정 대표의 말이다. ‘딱 1주일만 맛있는 옥수수’. 정 대표는 그말을 듣고 선물과 함께 편지를 동봉했다. “정선의 천만이 엄마가 밭에서 기른 옥수수입니다”로 시작한 글은 이런 옥수수 이야기와 옥수수를 좀 더 맛있게 쪄 먹는 방법을 감성적으로 풀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전화만 수십 통 받았다.

이 옥수수 일화야말로 그에게 ‘이야기를 덧붙인 특산품’이라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게 해줬다. 채권 펀드 매니저에서 금융부티크(비제도권 사설 투자자문사), 전통장류 전문기업인 ‘메주와 첼리스트’의 CEO를 거쳐 안그라픽스의 디자인사업부 기획이사, 그리고 지금의 다리컨설팅 대표까지 돌고돌면서도 “언젠가는 이 일을 꼭 해내고 말겠다”는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정 대표는 명인명촌의 키워드를 ‘특산품과 특산품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로 정했다. 또 하나는 ‘선물’이었다. ‘메주와 첼리스트’의 CEO로 일하면서 그는 ‘선물’ 시장이 굉장히 매력적이란 걸 깨달았다. 좋은 물건을 많이, 잘 팔기 위해선 선물세트 만한 것이 없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많은 선물이 오고가잖아요. 선물이라고 받지만 모두 비슷하고 큰 의미도 없죠. 제철음식으로 마음을 전하는 선물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메주와 첼리스트’에서 전통식품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포장해 선물세트로 만들었던 일이며 안그라픽스에서 디자인을 접했던 경험등은 명인명촌의 토대가 됐다. 정 대표는 지난해 5월 현대백화점과 공동으로 ‘명인명촌展’을 개최하면서 10여 년간 간직해온 아이디어를 하나씩 풀어냈다.

정 대표는 명인명촌 프로젝트를 ‘마인드케어 서비스’라고 설명한다. 평생을 특산품 만들기에 바쳐온 명인의 진심과 이야기가 담긴 특산품에 다시 내 마음을 보태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의미다. “부모·은사 혹은 친구나 지인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그 진심이 전해지도록 하는 게 명인명촌의 역할입니다.”

명인명촌이라는 이름에 ‘명인’을 먼저 쓴 이유도 있다. 만드는 사람의 성정이 좋지 않으면 언젠가 상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 대표의 생각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숨은 명인을 찾는다. 도전의 식과 장인정신을 가진 명인, 아울러 그 명인의 진정성이 스며든 특산품을 찾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하루 3시간씩, 3팀을 만나고 나면 입에서 단내가 나요. 그렇게 50군데를 다닌 적도 있어요.” 그래도 이 일을 게을리 할 순 없다.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명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명인명촌전을 기획한 다리컨설팅의 정두철 대표. 그는 “명인명촌을 통해 제철음식으로 마음을 전하는 선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사진=황정옥 기자 >


올해 눈여겨볼 만한 새로운 명인


명인 문순천씨의 해어림 어간장

밥 지을 때 빼곤 어느 요리에나 쓸 수 있다는 어간장. 명인 문순천씨가 만든 어간장은 특별하다. 고등어나 멸치가 아닌 고도리(고등어 새끼)와 전갱이를 쓴다. 문씨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수산 발효식품 중 하나인 어간장의 맥을 잇겠다는 사명감으로 ‘해어림 산지가공’을 설립했다. 초여름부터 잡은 고도리와 전갱이를 소금 작업해 밀봉하고 1년 3개월간 기다리면 포도주처럼 맑은 액과 가시로 분리된다. 어간장은 ‘고기 녹아내린 물’이라고 해서 ‘어로(漁露·고기이슬)’라고 부른다. 2차 숙성은 6개월 넘게 걸린다. 무보다 칼슘이 20배나 많은 무말랭이와 다시마를 넣고 전통 옹기에서 숙성시킨다. 1차와 2차 숙성과정을 거치려면 적어도 2년이 소요되는데, 해어림의 제주 어간장은 최소 3년 이상 숙성시킨다. 어간장의 맥을 이은 공로를 인정받아 문씨는 2005년 12월 대한민국 신지식인 인증을 받았다.

[사진설명]어간장의 맥을 잇기 위해 만든 해어림 산지가공의 문순천 명인.


명인 박일성·박동권씨의 유황 흑미쌀

‘진도 황진이 유황쌀’을 만드는 명인은 두 명이다. 유황액을 개발한 박일성씨와 쌀을 재배하는 박동권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생명에 이로운 쌀을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해 유황쌀 연구에 몰입했다. 처음엔 유황가루를 직접 논에 뿌려 재배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유황의 독을 이기지 못하고 벼가 모두 죽어버리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후 논에 물을 댈 때 직접 개발한 유황액을 섞는 방법으로 특허등록을 마쳤다.

원래 땅에는 어느 정도의 유황 성분이 있으나 산성화·황폐화로 인해이 성분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유황 성분은 땅을 본래 성질로 되돌려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유황 성분을 흡수한 땅에서 자라는 벼는 병충해에 강하고 잘 자란다. 유황쌀은 몸의 면역력을 높이고 어린이 성장발달과 다이어트, 세포노화방지에 도움이 된다.

[사진설명]‘생명에 이로운 쌀을 만들자’고 결심한 박일성·박동권 명인의 유황 흑미쌀.


명인 성명희씨의 해바랑 간장

성명희씨는 직접 재배한 콩으로 간장과 된장을 담근다. 좋은 장을 담그기 위해선 무엇보다 물과 공기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도 양평의 청정지역에 농장을 마련했다. 영리추구보다 사명감으로 만들어진 이곳의 간장은 예부터 내려오는 ‘낙선재’라는 궁중요리비법에 따라 1년에 딱 한 번, 정월 말일에 만든다. “된장과 간장은 콩이 중요하다”는 성씨는 약 600개의 장독에 장을 담근 후 직접 찾아온 사람들에게만 판매하고 있다. 판매되는 간장은 담근지 3년· 5년된 것이다.

[사진설명]궁중요리비법에 따라 1년에 딱 한번, 매년 정월 말일에 장을 담그는 성명희 명인의 해바랑 간장.

[사진제공= 다리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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