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남미 진출 "브라질을 거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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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브라질 최대 도시인 상파울로에서 리오데자네이로를 향해 1백50㎞쯤 달리면 타우바테라는 소도시가 나타난다.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변에 'LG' 라는 큼직한 간판이 눈에 띄고 그 너머로 50만평의 광활한 공장부지가 펼쳐진다.

LG전자의 브라질 현지법인인 LGESP는 현지에 진출한 외국 전자업체 중 가장 규모가 큰 컴퓨터 모니터 공장이다.

이곳에서는 7백여명의 현지 근로자들이 연간 1백50만대의 모니터를 생산한다. 80%는 현지에서 판매되고 나머지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으로 수출된다.

브라질 LG전자 황운철 대표는 "최근 브라질의 경기 회복과 함께 모니터 시장이 연평균 16%의 고성장을 하고 있어 생산라인을 풀가동해도 물량을 대기에 부족한 실정" 이라고 말했다.

LG는 브라질 진출 4년 만에 현지 시장점유율 32%를 기록하며 최대의 모니터 생산업체로 부상했다.

삼성전자 역시 시장 점유율 28%를 자랑하며 LG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국의 두 전자업체가 브라질 모니터 시장의 절반을 휩쓸 정도로 도약한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 정책이다.

LG공장 모니터 제조라인에서 만난 미셀리 줄리아나양은 "LG가 많은 브라질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첨단기술도 전수해 줘 외국업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며 환하게 웃었다.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 등이 주축인 남미공동시장은 올해부터 무관세 교역을 하면서 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다른 지역에서 수입할 때는 높은 관세를 매기며, 완제품 소비재에 대해서는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예컨대 브라질은 올초 인근 아르헨티나에서 게맛살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수입하는 게맛살에 수입 관세를 5%정도 더 높였다.

이 때문에 LG와 삼성 등은 현지생산은 물론 원자재도 공동시장 내에서 수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현지 업체와 똑같은 입장에서 경쟁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브라질은 지난해 11월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올해부터는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 가속도가 붙을 경우 세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브라질 경제는 지난해에는 0.8% 성장에 그쳤으나 올해는 3.5%의 성장이 예상돼 세계 9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철광석과 금광석.산림 등 30여종에 이르는 풍부한 천연자원에다가 인구가 1억7천만명이며 교육수준도 높은 편이어서 시장 잠재력도 대단하다.

현재 브라질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삼성전자.LG전자.삼성SDI.메디슨 등 모두 8개업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니터.휴대폰 단말기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LG전자는 컬러TV.VCR.전자렌지.DVD도 생산하며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브라질의 경제회복과 함께 한국 업체들의 투자전략도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LG전자는 약 1천9백만달러를 투자해 모니터와 단말기 라인 3개를 증설, 내년에는 이 두 품목의 올해 매출액 2억8천만달러(추정치)을 크게 능가하는 4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모니터와 단말기 생산량을 올해보다 2배 정도 더 늘릴 계획이다.

삼성 SDI가 생산하는 모니터용 브라운관(CDT)의 절반 이상을 LG전자가 구매하는 등 국내업체간의 협력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이기 상파울로 무역관장은 "최근 들어 한국의 중소 신발 원부자재 업체가 브라질에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등 브라질을 남미 공략의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업체들 사이에서도 활발하다" 고 말했다.

상파울로〓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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