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다단계회사 위장투자 하다 카드로 진 빚은 본인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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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신용카드로 물건을 할부로 산 것처럼 꾸며 다단계 판매회사나 유사 수신업체에 투자했던 사람들의 카드빚에 대해 카드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는 11일 카드 할부구매를 통해 다단계 회사에 투자했다 투자금을 모두 날린 카드 사용자들이 "가맹점 감시 소홀 등 카드사의 잘못으로 진 빚인 만큼 카드대금을 갚을 수 없다"며 LG카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김모(34)씨 등 355명은 '2~3개월 안에 원금을 돌려주고 매달 이익금도 지급하겠다'는 다단계 판매회사인 H사의 말을 믿고 2001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 회사 회원으로 가입했다. 계좌당 155만원씩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투자금을 현금으로 마련할 수 없었던 이들은 신용카드를 이용했다.

투자액에 상당하는 회사 물품을 산 것처럼 할부로 결제한 것이다. 매출전표를 본 카드사는 정상적인 거래로 알고 전표의 금액대로 회사에 지급했다. 하지만 이 회사 경영진이 투자금을 갖고 달아나 이들은 원금을 모두 날렸다. 카드대금을 갚으라는 카드사의 독촉이 계속되자 김씨 등은 2003년 1월 "카드사가 가맹점인 H사의 영업형태가 사기거래인지를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소홀히 했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카드사가 가맹점의 영업을 감시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카드 사용 후 물품을 받지 못했으므로 카드대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거래를 취소하지 않았으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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