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2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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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2. 연구인들의 수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김수암씨는 조금씩 증상이 호전되어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완쾌되어 한 달 만에 연구실을 찾은 김씨는 나에게 연구원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에겐 미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로선 일생일대의 과제인 유행성 출혈열 연구를 포기할 순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 그를 설득했다. 논리는 딱 하나였다.

이제 당신은 유행성 출혈열에 한번 감염돼 체내에 충분한 항체가 생겼으므로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유행성 출혈열 연구를 위해 현장에 마음놓고 들쥐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란 뜻이었다.

우리나라에 창궐하는 괴질의 원인을 한국인이 밝혀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강조했다. 치료비는 물론 가족의 생계 등 이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실험실로 복귀했다. 그가 돌아오면서 다른 연구원들도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와 한 달 만에 겨우 실험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올해 61세인 김씨는 비록 국졸 학력이지만 나의 연구에 없어선 안될 중요한 존재였다. 그는 실험에 필요한 쥐나 박쥐.뱀을 잡아 공급하는 것은 물론 피를 뽑는데도 천부적인 능력을 보여줬다.

대부분의 바이러스 실험은 살아 있는 동물 혈액이 필요한데 실처럼 가느다란 뱀의 심장이나 쥐의 꼬리 혈관에 바늘을 찔러 피를 척척 뽑아냈다.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구 도중 김씨처럼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된 연구원이 모두 8명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 중 7명은 실험동물을 만지다 감염됐지만 조직배양을 담당한 실험실 테크니션 유선자씨는 연구실에서 감염됐다. 유행성출혈열을 진단하기 위한 슬라이드를 밤새워 만드는 과정에서 공기 중에 퍼져나온 바이러스가 호흡기로 들어가 감염된 것이다. 그녀는 나흘 동안 소변에 피가 나왔고 심한 요통을 겪어야했다.

유선자씨는 단언컨대 바이러스 조직배양에 있어서 국내 최고라 불릴 만하다. 어떤 종류의 세포를 갖다줘도 바이러스를 척척 배양해냈다.

김씨와 마찬가지로 유씨도 내가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60년대 초 서울대의대 전임강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한 실험실 직원이다.

현재 김씨는 녹십자 목암연구소에서 러시아에서 유행하는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 백신개발을 위한 동물실험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씨는 올해 초 은퇴했다. 나는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금전적 사례를 하였으나 지금도 미안한 심정이며 한편으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실험 도중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된 사람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이는 현재 고려대의대 미생물학 주임교수로 있는 백낙주 선생이다.

당시 나의 실험실 연구원이었던 그는 생사의 고비를 여러차례 넘겼다. 유행성 출혈열은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들어온 발진열 세균에 감염됐는가 하면 열대지방에서 유행하는 치명적 바이러스질환인 뎅기열에 걸리기도 했다.

뎅기열 바이러스를 쥐에게 주사한다는 것이 실수로 자신의 손가락을 찌르고 만 것이다.

뎅기열은 유행성 출혈열보다 훨씬 치명적인 병이다. 우리는 뎅기열 바이러스에 저항할 수 있는 항체를 담은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긴급히 주사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럼에도 그의 피부엔 발간 발진이 생기는 등 뎅기열로 심한 고생을 했다. 어찌 보면 죽음을 불사하고 나의 연구에 헌신한 이들이야말로 일등 공신이라 할 만하다.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인 한탄 바이러스는 이호왕이 발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들의 숨은 공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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