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더 이상 대만에 밀릴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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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대만세에 밀려난 일본의 한국기사들이 패권 탈환을 위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조선진9단은 2일 도쿄(東京)의 일본기원에서 열린 일본 기성전(棋聖戰) 도전자 결정전에서 아와지 슈조(淡路修三)9단을 불계로 물리치고 대망의 도전권을 장악했다.

기성전은 우승상금만 4억2천만원인 일본 최대 기전으로 조치훈 9단이 올 초 대만계의 왕리청(王立誠)9단에게 타이틀을 빼앗겼었다.

이제 조선진 9단이 선배인 조치훈 9단을 대신해 설욕전에 나선 셈인데 조선진 역시 올해 대만계의 왕밍완(王銘琬)9단에게 자신의 본인방(本因坊) 타이틀을 넘겨준 바 있어 이래저래 감회 깊은 도전기가 될 전망이다.

14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한 조치훈 9단도 지난달 23일 왕좌전 도전기 첫판에서 왕리청 9단에게 불계승하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왕좌전은 일본랭킹 6위의 기전으로 우승상금 1억5백만원. 3대 기전 전문이었던 조9단에게 왕좌전 정도는 양에 찰 리 없겠지만 상대가 '1인자' 왕리청이기에 의미 있는 한판승부로 부각되고 있다.

조9단은 왕리청에게 기성을 빼앗긴 지 8개월 만에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에게 랭킹2위의 명인마저 넘겨줘 무관이 되었고 그후 조치훈의 재기 여부는 계속해서 바둑계의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유시훈 7단도 랭킹 5위의 천원전(우승상금 1억5백만원)에서 도전권을 따내 9일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9단과 5번기의 첫판을 시작한다.

유7단은 지난 1994년 린하이펑(林海峰)9단을 꺾고 천원을 쟁취한 뒤 3연패하여 일본 바둑계의 강력한 신흥강자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이후 유7단은 승부에 대한 집착력을 잃는 정신적인 방황을 겪으면서 내리막 길을 걷다가 올해 다시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바둑엔 한국.대만.일본의 3대 세력이 있다. 이중 최대 세력인 일본세는 기타니(木谷)도장이 문을 닫은 이후 점차 쇠락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한국세는 조치훈의 출중한 활약으로 단연 돋보였으나 최근 대만출신 기사들의 강력한 힘에 밀리는 양상을 보여왔다.

린하이펑-왕리청-왕밍완으로 이어지는 대만세와 조치훈-조선진-유시훈으로 이어지는 한국세의 싸움은 이제 3라운드를 맞이한 셈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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