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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고 고황경 전 서울여대 명예총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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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줄기 맑은 샘물 힘차게 솟으니 흐르는 곳곳마다 생명이 새롭다' .

6일 바롬 고황경(高凰京.전 서울여대 명예총장)박사의 영결예배가 열린 서울여대 대강당. 만추(晩秋)의 국화향기처럼 세상에 은은한 향기를 전하다 지난 2일 92세로 유명을 달리한 스승을 애도하는 후학들의 찬송가 소리가 강당에 가득했다. 윤경은(尹慶恩)총장의 조사가 이어지자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선생님은 혼자 힘으로 시작한 학교 설립이 여의치 않자 국내외 지인들에게 모금을 하러다니는 것이 일이셨습니다. 한 번은 모금을 위해 미국에 다녀오면서 동생에게 '너무 힘들어. 내가 탈 비행기가 떨어져 버렸으면 좋겠어' 라고 하신 적도 있었죠. 그 이야기만 들으면 저는 언제나 격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

尹총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조사를 읽어내려가자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하던 지인들과 제자들은 손수건을 꺼내들고 끝내 흐느낌으로 스승을 배웅했다.

고인은 척박했던 여성교육을 개선하고자 전국 각지의 교회를 다니며 모금활동을 벌여 1961년 서울여대를 설립한 여성계의 큰 봉우리였다.

'바른 생각으로 바르게 행동하라' 는 신조를 반영한 그의 호 바롬은 한글학자 한갑수(韓甲洙)선생이 지어준 것이다.

고인은 1909년 서울에서 4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브란스의전 외과과장을 지냈던 고병우 박사이고, 독립운동가 金마리아여사가 그의 당고모다.

24년 경기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영문학과 법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외국 박사가 됐다. 이화여대 교수.경기여중 교장 등을 역임한 그는 각종 사회활동에서 선구자적 면모를 드러냈다.

고인은 해방 이후 여성으로는 첫 총경을 지낸 언니 고봉경(高鳳京)씨와 함께 월급을 털어가며 경성자매원을 세워 사회사업에 나섰다.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산아제한 운동을 벌였고 대한어머니회 설립에도 앞장섰다.

서울여대 장연집(張蓮集.아동학과)교수는 "요즘 부각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미리 파악하고 해결하려 했던 선생님의 선견지명이 놀라울 뿐" 이라고 회고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고인은 "서울여대가 내 자식" 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면서 제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생활교육을 강조한 고인은 제자들을 4년간 '생활관' 에서 지내도록 해 서울여대생들이 스스로를 '여자 육사생' 이라고 부를 만큼 엄격히 가르쳤지만 "수시로 과자를 사들고 생활관을 찾아 이불 속에 발을 집어 넣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고 전혜정(全惠晶.의류학과)교수는 기억했다.

졸업생 수를 전부 합해 3백65로 나눈 뒤 매일 졸업생들을 위해 번갈아 기도를 한 것도 유명한 일화.

서영훈(徐英勳)민주당 대표.백경남(白京男)여성특위원장 등 대강당을 메운 2천여명의 조문객들은 尹총장의 마지막 조사를 들으며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함께 했다.

"아름다운 계절을 택해 훌쩍 떠나신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바람결에, 그리고 아름답게 떨어지는 낙엽소리에 실려오는 선생님의 음성을 우리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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