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로 '의병마을' 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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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짓기 두레 회원들이 의병마을 공사장에서 기둥을 세우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가정리 의병장 유인석 선생 유적지 옆 의병마을 공사 현장. 기둥이 세워진 한옥에 서까래 거는 작업이 한창이다.

"서까래는 편안하게 걸어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뒤틀리지 않습니다."

이상삼(41.강원도 홍천군 동면 노천리)씨의 주문에 허길영(33)씨는 "편안하게 건다는 게 뭡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이씨는 "서까래와 연결되는 도리 및 평고대(平高臺.처마 끝에 가로놓은 건축재)와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야 서까래가 돌아가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씨의 설명을 들은 인부들은 서까래를 이리 저리 돌려본 뒤 가장 안정됐다고 판단되면 길이 한 자(30㎝) 정도의 못을 박아 도리에 고정시켰다.

의병마을 공사장에서는 이처럼 인부들끼리 묻고 대답하며 일한다. 일의 능률은 크게 따지지 않고 집을 바르게 짓는 데 더 정성을 기울인다. 품앗이로 집을 짓는 '집짓기 두레' 회원들이 서로 기술을 배우며 일하기 때문이다.

집짓기 두레는 대표 이상삼씨가 2002년 9월 홈페이지(www.cafe.daum.net/housingdule)를 만들면서 시작된 모임으로 현재 전국 회원이 4760여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20여명이 이번 의병마을 짓기에 동참했다.

의병마을은 800평의 부지에 숙소.강의실.편의시설 등 모두 다섯 채(130평)의 전통 초가로 지어질 예정. 국비와 지방비 지원을 받아 마을을 짓는 '사단법인 의병마을'이 건축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씨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공사가 시작됐다.

지난 6월말 현장에 온 두레 회원들은 직접 공사장 풀베기.낙엽송 다듬기 등을 했다. 그 결과 7월 한 달 동안 무더위와 싸워가며 만든 낙엽송 재목이 1500여개에 달했다.

터 닦기 공사가 늦어져 각자 생업의 터전으로 흩어졌던 회원들은 지난달 중순 다시 모여 본격적으로 집 짓기를 했다.

제주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근(53)씨는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짓기 위해 공사장에 나왔다.

청각 장애인 남정수(50)씨는 나무 다루는 취미를 살리기 위해 참가했고, 은행원 출신 임용운(33.대구시 칠곡동)씨는 건강이 나빠 자연에서 살겠다고 생각한 뒤 두레에 가입해 아예 가정리로 주소를 옮겼다.

참가자 중 최연장자인 이용환(58.경기도 고양시)씨는 외국계 회사를 그만둔 뒤 올해 봄 충남 서천에서 농가주택을 한 채 샀다. "농촌에 가려면 주민들을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회원 가입을 하고 공사장에 나왔다"는 이씨는 "이제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졌고 집 짓는 두려움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낮에 현장 실습을 한 뒤 밤에는 숙소인 마을회관에서 이론을 공부한다.

두레 대표 이씨는 "의병들의 숭고한 뜻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취지에 공감해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의병마을은 11월말까지 공사를 끝내고 12월초 입촌식을 할 계획이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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