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부터 김점선 초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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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거대한 검은 염소가 묵직하게 이쪽을 쳐다본다. 하얀 코끼리 가족이 기분좋은 표정으로 나란히 서있다. 부지런한 거위들이 바쁜 걸음으로 뛰어간다. 허리가 기다란 사슴이 날듯이 뛰는 아래쪽으로는 장미 두송이….

오는 4~18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조에서 열리는 초대전 '김점선의 아이리스, 말, 그리고… " 는 천진한 마음으로 그려낸 목가적 세계를 보여준다.

김점선(54)의 근작 30여점은 관습에 닳지 않은 꾸밈없는 모습이다. 그가 즐겨다루는 소재는 어린 시절의 추억속에 들어있는 세상이다.

때론 실제로 본 것들, 때론 그림책이나 동화책에 들어있는 내용들이다. 이를 간결하고 단순하게, 마음에 느끼는 대로의 원근법으로 그렸다.

평론가 김종근은 "그의 그림에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구별이 없다. 꽃 한송이만 달랑 화면에 들어있는가 하면 말들이 눈을 감고 행복한 듯 졸고 있다. 처음보면 산인듯 하지만 실은 말이기 일쑤다. 구도도 원근법도 색채도 제맘대로다. 자신의 자유와 표현정신, 맑고 투명한 거짓없는 마음만이 남아있다. 이같은 화풍은 작가의 성격 자체에서 온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말한다. "나는 지금껏 김점선처럼 남의 눈치 안보고 자기가 생각한 것을 생으로 드러내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위선을 떨 줄을 전혀 모른다. 그가 그리는 방법은 말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대상이 풍기는 위선을 걷어내고 직통으로 본질을 포착한다"

1983년이래 해마다 한두차례의 개인전을 열어온 작가는 "평생토록 남편은 벌이가 없었고 나는 그림 외의 생계수단이 없었다.

나는 아마도 그림만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한국 유일의 평생 전업작가일 것" 이라고 말한다.

98년 남편과 사별한 작가는 "요즘은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그림을 그린다. 행복한 그림, 어릴 때 베갯잇에서 본 이쁜 그림을 그리다보면 슬픔을 잊는다" 고 말했다.

작가는 이화여대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학원 재학때 이미 파리 비엔날레 출품작가 후보로 선정됐었다. 02-738-1025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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