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시장 변화 바람 거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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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미국으로 이민이나 지사 근무를 준비할 경우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낮선 제도가 월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에서도 월세는 흔한 일이 됐다.

중소형 아파트가 많은 서울의 노원구.도봉구 일대는 최근 전세대 월세의 비율이 2대8 정도로까지 늘어나고 있다.

월세의 확산 뿐만 아니다. 국내 아파트 시장에 불고 있는 거센 변화의 바람은 여러 가지 모습이다.

전세가는 크게 오르다 다소 수그러들기는 했으나 전세품귀현상은 가시시 않고 있고 전세가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매매가는 별로 오르지 않고 있다.

전.월세가 늘면서 중대형 아파트보다 소형 아파트에 수요가 몰리고 있고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건설업체들도 이제는 짓기만 하면 팔 수 있었던 물량 위주의 공급전략을 탈피하지 않을 수 없다.

인기 지역이나 전망좋은 곳을 골라 아파트를 내놓거나 수요자 구미에 맞는 다양하고 색다른 평면의 아파트가 아니면 분양조차 하기 힘들게 됐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투자수단에서 주거개념으로 주택에 대한 인식이 폭넓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 전세 강세, 월세 급성장〓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전세값 오름세는 하반기까지 꺾일 줄 모르고 계속되다 최근들어 다소 추춤거리고 있다. 그러나 전세로 나온 집은 여전히 구하기 어렵다.

과거와 같은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수요자들이 전세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월세가 크게 확산된 것도 새로운 변화다. 금융권의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집주인들이 상대적으로 수익이 높은 월세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집을 구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제일기획이 지난 6월 서울.부산.대구등 5대 도시에 살고 있는 성인 남녀 3천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라이프 스타일 조사'에서 부동산 투자가 재산증식의 가장 활발한 방법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2.7%로 92년(34.9%)에 비해 10%이상 떨어졌다.

◇ 소형 아파트 인기〓수도권 곳곳에 중대형 아파트는 미분양이 많이 있지만 20~30평형의 소형 아파트는 그런대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매매가 활발하다.

소형 아파트가 인기를 끄는 것은 전세나 월세의 강세 덕분이다. 소형 아파트일수록 전.월세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대형아파트보다 소형아파트의 가격상승률이 높았다.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매매값 상승률을 보면 20~30평형대 아파트가 중대형을 웃돌고 있다.

◇ 간접투자 관심고조〓주택을 직접 사고 파는 투자 방식보다는 전문가에게 부동산 투자를 맡기는 간접투자시대가 열리고 있다. 리츠(REITs, 부동산투자신탁)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위험성이 적고 안전하다는 이점을 지닌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에 대해 전문가들은 밝은 전망을 하고 있다.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은 돈이 땅에 잠기는 일도 없고 큰 돈이 아니어도 가능하기 때문에 소액 투자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 개성있는 주택이 인기〓 '성냥갑 아파트' 에서 탈피한 다양한 모습의 아파트들이 등장하고 있다.

주택건설업체들이 과거와 같은 평범한 아파트로는 수요자들의 눈을 끌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파트 내부구조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평면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점이다.

베란다에 툇마루를 설치해 한옥의 분위기를 살린다든지 부엌과 화장실을 햇볕이 드는 쪽으로 시설하는 등 대형 건설업체들은 특화된 평면을 개발, 특허를 출원하기도 한다.

외관도 바뀌고 있다. 칙칙한 회색빛 아파트, 획일적인 모습 대신 산뜻한 색채와 일반 건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입체 설계가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많이 짓는 것이 능사였으나 이제는 까다로운 수요자의 구미에 맞추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라는게 건설업체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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