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복병 네이더' 고어 표 야금야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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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대선이 2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갈길 바쁜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막판에 복병을 만나 쩔쩔 매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23일 대기업에 맞서 싸워온 소비자 - 운동가로 '소비자 대통령' 이란 별명이 붙은 랠프 네이더(사진) 녹색당 후보를 선거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복병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미네소타주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고어 후보측은 기겁을 했다. 자신들 텃밭이었던 이 주에서 44%대 41%로 오히려 부시 후보에게 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네이더가 8%의 지지를 얻으면서 진보 성향의 민주당 표를 갉아먹은 것이다.

환경주의 운동이 거센 오리건과 워싱턴주, 민중주의적 분위기가 강한 위스콘신이나 미네소타.미시간.메인주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온 6개주(선거인단 총 61명)에서 이런 현상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어가 부시를 일방적으로 리드하던 오리건주에선 최근 고어의 리드가 1%로 줄었다. 대신 네이더 지지가 6%로 올랐다.

미시간주에선 고어와 부시가 똑같이 43%인데 네이더가 3%를 얻었고, 워싱턴주에서는 고어 45%, 부시 43%에 네이더가 5%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 네이더가 5% 이상 얻으면 고어가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쯤 되자 고어측은 일제히 네이더가 '판을 망치는 사람(spoiler)' 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어의 선거운동본부장 윌리엄 데일리는 "네이더에게 표 찍는 것은 부시에게 표를 찍는 것" 이라고 단언했다.

오리건주 민주당 지도자인 닐 펜더는 "네이더의 대선 출마는 진보주의 운동 관점에서 보면 무책임하고 무자비하다.

그는 30년간 자신이 주장해왔던 (진보주의의)대의명분을 이기주의를 위해 희생시키고 있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네이더는 이런 주장들을 일축하며 고어와 부시 후보 모두를 싸잡아 공격했다. 그는 "조지 부시는 인간의 탈을 쓴 대기업에 불과하다.

고어도 (민중의)배반자일 뿐이다. 고어와 부시의 차이가 있다면 대기업이 자기들 사무실 문을 노크할 때 무릎 꿇는 속도가 약간 다르다는 것일 뿐" 이라고 빈정거렸다.

네이더에 대한 전체 지지도는 약 4%다. 이번 선거에서 5% 이상을 득표해 다음 선거때 연방정부 선거 지원금을 받는 것이 그의 목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가 선거 당일 모두 표로 연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진보성향 유권자들이 사표(死票)를 피하려 할 가능성이 크고 부시를 당선시키느니 고어를 찍자는 분위기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한편 공화당에서 떨어져 나와 개혁당 후보로 출마한 보수주의자 팻 뷰캐넌은 고어측으로선 실망스럽게도 지지율이 1% 정도에 불과하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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