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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문화콘텐트 전쟁’ <상> 쑥쑥 크는 중국 온라인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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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제대국 중국이 문화파워도 키워가고 있다. 고전 『서유기』를 모티브로 넷이즈가 개발한 온라인게임 ‘대화서유’의 배경 이미지. [넷이즈 제공]

문화전쟁 시대다. 키워드는 콘텐트다. 잘 빚은 콘텐트 하나가 돈이 되고, 파워가 된다. 국가의 앞날도 좌우한다. 더 이상 ‘한류의 추억’에 취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른바 21세기 동북아 시대, 한국·중국·일본의 ‘콘텐트 대전’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콘텐트 생산기지를 돌아보며 우리 문화산업의 오늘을 점검한다.

19일 중국 베이징 서북쪽 오다우커우(五道口) 지역 내 중관춘(中觀村).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업체와 중국 주요 포털 업체인 소후닷컴·QQ닷컴(턴센트 그룹) 본사가 늘어서 있다. 베이징대·칭화(靑華)대·런민(人民)대와도 지척이다.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은 바로 이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둥지를 바꾼다.

게임개발업체 넷이즈(www.163.com) 본사도 여기에 있다. 1997년 중국 첫 포털사이트로 출범한 넷이즈는 중국 인터넷시장이 폭발하면서 일약 나스닥 상장기업으로 성장했다. 창립자 딩웨이는 2003년 포브스가 집계한 중국 부호 1위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온라인게임은 해외 제품을 서비스하는 데 그쳤다. 온라인게임 시장이 뜨거워지자 넷이즈는 자체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02년 ‘대화서유’, 2004년 ‘몽환서유’가 나왔다. 지난해 넷이즈의 온라인게임 매출은 30억 위안(약 5100억원). 올해는 50억 위안을 내다본다.

19일 만난 넷이즈 사업개발부 온라인게임 총괄담당 팡따츠는 중국 시장을 키운 게 외국 게임이라고 했다. “초창기엔 한국 등 외국게임이 시장을 장악했다가 2004년 즈음 중국산 게임이 본격 등장했죠. 이런 상품들이 충돌·경쟁하면서 시장이 대폭발했습니다.”

‘몽환서유’ 캐릭터

◆민관합동, 게임 띄우기=“중국 게임 시장 70%를 한국산이 휩쓸고 있다.” 2003년 중국 문화부는 이렇게 경종을 울렸다. 한국산 게임이 중국 시장을 맹렬히 파고들던 때다. 이 해 서비스된 한국 게임 ‘미르의 전설2’는 동시 접속자 수 80만 명을 기록했다. 댄스게임 ‘오디션’, 농구게임 ‘프리스타일’, 슈팅게임 ‘크로스 파이어’ 등이 줄줄이 히트했다.

중국 정부와 업체들이 즉각 반격에 나섰다. 정책당국은 자국 게임에 심의 간소화 같은 정책 혜택을 제공했다. 한국산을 비롯한 외국 게임엔 규제 잣대를 들이댔다. 대학과 산학협약을 맺고 기금을 통해 소규모 게임개발사를 도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히트작이 ‘몽환서유’다. ‘몽환서유’는 지난해 8월 동시 접속자 수 256만 명을 기록했다. 9월에는 회원가입자 수 2억 명을 돌파했다. 둘 다 중국 내 최고 기록이다.

◆방대한 고전 콘텐트= 팡따츠 총괄담당은 토종 게임 성공의 3대 이유를 꼽았다. ▶게임의 자체 경쟁력 ▶신속·편안한 서비스 ▶중국 맞춤형 콘텐트다. 그는 "‘몽환서유’는 중국 고전 『서유기』가 배경이다. 손오공 등 익숙한 캐릭터가 나오고 전통 음식인 종자(물만두)가 등장하는 게임을 한국이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방대한 고전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중국 문화부가 펴낸 2009 온라인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258억 위안(약 4조3860억원). 2003년 연 20억 위안에 비해 10배 이상 성장했다. 중국 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1.2%에 이른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베이징사무소 권기영 소장은 “한국의 대표적 히트 게임이 아니면 중국 시장에서 경쟁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5년 내 한국 잡겠다=중국은 내수 시장을 넘어 한국까지 넘보고 있다. 2007년 CJ인터넷이 들여온 ‘완미세계’ 등이 호응을 얻었다. 특히 저사양 PC에서 구동 가능한 웹게임은 중국산이 서비스 물량에서 앞서는 상황이다.

한국 업계도 긴장하는 눈치다. 넥슨 이재교 홍보이사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중국 메이저 업체들이 자체 개발력을 강화하고 해외 공세에 나선다면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 온라인게임 수출액은 전년 대비 47%나 성장하며 사상 첫 1억 달러를 돌파(1억600만 달러)했다. “한국의 온라인게임 수출(15억 달러)을 5년 내 따라잡겠다”(국가신문출판총서 쑨소우샨 부국장)는 호언이 예사롭지 않다.  

베이징=강혜란 기자



중국 정서를 파고들었더니, 톱10 중 한국산 4개

한국의 전략은 “한국 게임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중국 유저의 불만이 많다. 본토화 전략 없이 덤볐다가 리스크만 키울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 게임 개발업체인 턴센트 그룹 해외사업부 리우춘화 팀장의 말이다. 온라인 게임 역시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중국 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조언이다. 실제로 한국 업체들은 현지화 전략에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24일~29일), 중국 대형 포털 바이두닷컴(www.baidu.com)의 온라인게임 순위 1위는 한국의 ‘던전 앤 파이터’(이하 ‘던파’)가 차지했다. 톱10 중 한국 게임이 4개다. ‘아이온’을 제외하고 ‘던파’ ‘크로스 파이어’ ‘미르의 전설’은 모두 장수 히트작들이다.

이들 게임의 핵심 전략은 중국 문화 파고들기. ‘미르의 전설’은 무협이라는 동양적 콘텍스트로 중국 게이머를 유혹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등 서양 그래픽 일색이던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업데이트를 할 때도 영웅 시스템, 내공 시스템 등 중국 정서와 무협 요소를 적극 가미했다.

‘크로스 파이어’는 아예 중국 버전에 현지 특성을 반영했다. 국내와 비교해 일반 유저가 많은 점을 감안해 쉽고 빠르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팀매치’보다 ‘팀데스매치’를 선호하는 중국인의 입맛에 맞게 유용한 아이템을 우선 추가했다. 중국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전투맵도 꾸준히 선보였다. ‘아이온’도 중국 버전에선 황실 의상을 추가했다.

네오위즈게임즈의 조계현 부사장은 “한국 게임이라고 중국인이 좋아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현지 문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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