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전문가 '맥루한' 재조명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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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현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대가로 불리는 마셜 맥루한(1911~1980.사진)에 대한 재조명이 서구 학계에서 활발하다.

'구텐베르크의 은하수' (1962) '미디어의 이해' (1964)등 명저를 남긴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 이라는 말로 유명한 학자. 그의 주요 저술이 1960년대에 쓰여졌지만 그 유효성이 2000년에 들어와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맥루한이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되돌아왔다' 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을 정도. 미국에선 그를 연구하는 1백50여명의 학자가 모임을 결성했고, 그를 재평가하는 학술서가 줄을 잇고 있다. 일종의 '맥루한 르네상스' 를 연상케 한다.

맥루한은 미디어의 발전과 인간존재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구텐베르크의 은하수' 에선 근대 인쇄혁명이, '미디어의 이해' 에선 TV로 대표되는 전자미디어가 서구문명에 미친 영향을 꿰뚫었다.

특히 이동전화.인터넷.위성방송.가상현실 등 첨단 미디어가 융성하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그동안 맥루한은 미디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기술결정론자로 오해받아 90년대 초반까지 거의 잊혀졌던 인물이었다.

맥루한이 예견한 대표적 사례는 '지구촌' 개념. 인류의 역사가 인쇄매체에 의해 근대국가로 전환됐다면 이번엔 전자매체에 의해 재부족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현대사회는 인터넷에 의해 국경을 초월한 정보교류가 진행되고 있으며, 각자의 관심에 따라 원시 부족국가와 유사한 공동체들이 속속 형성되고 있다.

전자미디어의 약진에 따른 위계질서의 붕괴도 설득력이 크다. 그는 '미디어의 이해' 에서 "TV의 출현 이후 일직선적인 조립라인은 공장에서 사라질 것" 이라고 점쳤다.

정보공유가 확산하면서 일방적이고 명령체계가 힘을 잃게 된다는 설명이다. 분권화.다양화.수평화를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정보시대를 30여년 전에 그려놓은 것.

사이버 전문잡지인 '와이어드(Wired)' 의 케빈 켈리 편집장은 "맥루한은 인터넷 시대의 문명을 예고한 선각자" 라고 말했다.

맥루한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띤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시각.청각 등 인간의 감각능력을 집적한 인터넷의 위력이 맹렬해진 새 천년에 접어들면서 열기가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97년 봄 맥루한 특집을 다뤘던 학술계간지 '현대사상' 의 김성기 주간은 "국내에선 아직 맥루한 연구작업이 미진하다" 며 "21세기의 청사진을 미리 제시한 그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김주간은 연말께 '미디어의 이해' 재번역본과 '맥루한의 이해' 란 편저를 출간할 계획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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