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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의 제국 흔든 스티브 잡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0호 34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황제’라고 불린다. 어진 황제가 아니라 ‘먼 옛날, 멀고 먼 은하에서(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로 시작하는 ‘스타워즈’의 음습한 황제 다스 시디어스에 가깝다.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없었고, 기금 350억 달러의 세계 최대 자선재단을 운영하는 게이츠는 개인적으로 참 억울할 것이다.

김창우 칼럼

황제가 요즘 강적을 만났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다. 전 세계에서 3000만 대 이상 팔린 아이폰을 앞세워 모바일 은하계에서 연일 MS를 밀어붙인다. 하얀 갑옷을 입은 제국군에 대항하는 반란군의 리더 루크 스카이워커 같다. 애플은 단말기를 직접 공급할 뿐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 개방 시장인 앱스토어와 음악·동영상 시장인 아이튠즈뮤직스토어를 통해 콘텐트까지 판다. 앱스토어는 개발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70%다.

한국에도 아이폰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말 출시되자 월 6만원 이상의 비싼 요금에도 일주일 만에 10만 대가 팔렸다. 현재까지 판매량은 20만 대를 넘어섰다. 아이폰의 국내 출시는 큰 의미가 있다. 국내 시장은 이동통신업체의 독무대였다. 무선 인터넷을 하려 해도, 모바일 게임을 내려받으려 해도 이통사를 통해야 했다. 개발업체들은 말은 안 하지만 소비자들로부터 받는 정보이용료의 절반 이상을 이통업체에 수수료로 내야 했다. 통신사는 한쪽으로는 가입자들로부터 비싼 무선 통신요금을 받고, 다른 한쪽으로는 개발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이런 푸대접에 익숙해 있던 한국의 가입자·개발자에게 아이폰은 복음이나 다름없다. 무선랜을 이용해 인터넷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다양한 게임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컴투스의 모바일게임 홈런배틀처럼 앱스토어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인기를 끄는 유료 소프트웨어도 나왔다. 아이폰은 단말기 자체도 훌륭하다. 손가락만 갖다 대어도 아이콘이 척척 선택되고, 조금만 움직이면 페이지가 휙휙 넘어간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본 운영체제(OS)의 승리다. e-메일 한 번 확인하려 해도 속이 터지는 윈도모바일(WM)과는 다르다.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태생 자체가 문제다. 제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인기를 끌수록 애플의 폐쇄성도 부각된다. 아이폰은 맥PC 사용자나 아이튠즈 프로그램을 쓰던 아이팟 사용자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반면 윈도 PC와 연결해 쓰려면 ‘지옥’이 시작된다. 나처럼 아이튠즈에 익숙하지 못한 어리석은 ‘제국의 신민’들은 MP3 파일 하나, 텍스트 파일 하나 마음대로 옮길 수 없는 아이폰이 답답하다. 1만~2만원짜리 싸구려 MP3플레이어도 PC에 연결하면 외장디스크로 잡히는 시대 아닌가. 잡스는 루크가 아니라 다스베이더로 변한 아나킨 스카이워커였나 보다.

문제가 있으면 대안이 나오기 마련이다. 애플의 약점을 구글이 치고 들어왔다. 12년 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창업한 구글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업체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모바일로도 진출했다. 구글이 만든 모바일용 OS인 안드로이드를 채용한 스마트폰들이 쏟아져 나온다. 페이지와 브린은 제국에 맞서는 레이아 공주와 한 솔로 커플을 보는 것 같다. 사실 하는 짓만 보면 구글은 MS보다 더한 ‘빅브러더’다. 나만 해도 몇 년 동안 주고받은 e-메일과 앞으로 1년간의 일정, 다양한 자료들이 디지털 데이터의 형태로 세계 어느 곳엔가 존재하는 구글 서버에 저장돼 있다. 구글은 사용자들의 검색 패턴과 관심사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광고에 활용한다.

그렇게 돈을 긁어 모았다. 믿는 것은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구글의 모토다. 아직까지 신뢰를 저버린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믿을 수밖에.
지난해 윈도7으로 건재를 과시한 MS는 올해 윈도모바일7(WM7)을 내놓을 예정이다. 모바일 시장에서 MS·애플·구글의 경쟁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WM7을 앞세운 ‘제국의 역습’이 펼쳐질지, 애플이나 구글 주역의 ‘제다이의 귀환’으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같은 한국 업체들이 제다이를 키우는 요다가 될지, 황제의 주구인 두쿠 백작으로 남을지도 관심거리다. 어찌됐건 한국 소비자들은 흥미진진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됐다.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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