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WMD 91년 이미 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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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의혹을 추적해온 이라크 서베이 그룹(ISG)이 6일 내놓은 1500쪽 분량의 최종보고서는 이미 익숙해진 내용을 담고 있다. ISG는 영국과 미국의 과학자와 군사 정보 전문가 1400명으로 구성돼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는지를 조사하는 기구다.

1991년 걸프전이 끝난 뒤 사담 후세인은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폐기했고 이후 개발을 시도하지 않아 지난해 미국의 침공 당시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요지다. 기존 이라크 관련 보고서들과 골격이 같다.

하지만 시점이 절묘하다. 미 대선이 26일 앞으로 다가왔고 이라크에서는 미군 사망자(7일 현재 1060명)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라크를 키워드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집중 공격해 왔다.

지금까지 두 차례 치러진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도 이라크가 단연 톱 이슈였다. 이런 시점에 발표된 보고서는 전쟁의 명분이 명백히 잘못됐음을 최종 확인한 셈이다. 부시 대통령으로선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보고서에는 기존에 밝혀진 것보다 더욱 자세한 내용도 있다. ▶후세인은 91년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했고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91년과 92년 그때까지 은닉해온 화학과 생물무기를 폐기했다 ▶95년엔 생물무기 프로그램도 포기했다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 당시까지 스커드 미사일을 보유하지 않았다 ▶걸프전 이래 후세인의 지상과제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아니라 유엔의 금수조치 해제였다 등. 하나같이 부시 행정부가 주장해온 전쟁 명분을 뒤집는 것들이다.

AP통신은 "이 같은 보고서 내용은 부시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키고 케리에게 표를 몰아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되살릴 잠재적 의지를 지닌 위협적 존재였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는 생물무기 재생산 가능성에 대비해 약간의 샘플을 남겨뒀고 관련 과학자들도 여럿 확보해뒀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이 부분을 강조하며 전쟁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시도 6일 유세에서 "후세인은 무기나 정보를 테러조직에 넘길 위험이 있는 인물이었다"며 "9.11 이후 그런 위험은 우리가 좌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변명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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