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막판 '막가는' 프로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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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야구판인가, '야바위판' 인가.

프로야구 정규시즌 개인타이틀 수상자가 대부분 결정된 12일 수원.잠실.대전에서 벌어진 한심한 개인타이틀 만들어 주기는 페어플레이와 거리가 먼 야바위판 수준이었다.

타격왕 경쟁이 벌어진 수원에서 현대는 치졸한 타이틀 지키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팀 투수 정민태.임선동.김수경을 18승으로 조율, 다승 공동 1위 세명을 탄생시킨 현대는 타율 1위 박종호(0.340)를 벤치에 앉히며 타율 타이틀 관리에 나섰다.

현대는 박의 경쟁상대 브리또(SK.0.338)에게 정면 승부를 피하며 고의성 짙은 몸맞은공을 내주는 한심한 작태를 연출했다.

브리또는 2차전 세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때린 뒤 네번째 타석에서 오른쪽 무릎을 맞아 13일 시즌 최종전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잠실에서 드림리그 2위가 확정된 두산은 LG를 플레이오프 파트너로 선택하기 위해 더블헤더 1차전에서 무려 13안타를 치면서 0 - 1로 완봉패를 당했다.

또 최다안타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던 이병규(LG)와 장원진(두산)은 속보이는 출장 기피로 공동 수상자가 됐다.

1차전에서 이병규가 손가락 부상을 이유로 선발에서 빠지자 1번 타자로 등장, 의욕을 보였던 장원진은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난 뒤 타이틀을 나눠먹기로 합의한 듯 두번째 타석부터 대타로 교체됐다.

"전날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는 게 라인업에서 빠진 이유였다.

대전에서는 구대성(한화)이 2차전 선발로 등판, 6이닝을 던지며 기어코 규정 이닝을 채워 방어율 1위를 차지했다.

마무리투수인 구대성에게 규정 이닝과 방어율 타이틀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1986년 삼성은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OB대신 롯데를 선택하기 위해 '져주기 경기' 를 펼쳐 비난을 받았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스스로 선택한 파트너 롯데에 덜미를 잡혔던 삼성은 이후 한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해 야구계에서는 "그때의 '져주기 악령' 이 삼성의 우승을 가로막고 있다" 는 뼈있는 농담이 오간'했다.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고 수준을 낮추는 프로야구가 어떻게 '국민들에게 건전한 여가 선용과 어린이에게 꿈을 준다' 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 수 있나. 차라리 "프로야구를 통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란 것을 배울 수 있다" 고 말하는 게 솔직할 것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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