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과의 10여 년 연애 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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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지경에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조선 건국의 틀을 놓은 정도전(1342~98)은 새 군주가 살 궁궐을 짓는 이들에게 이런 지침을 내렸다. 한마디로 “검소함을 숭상하라”다. 창덕궁은 조선의 여러 궁 가운데서도 한국 궁궐 조영(造營)의 전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어 아름답다. 철 따라 자연과 어우러지며 고즈넉한 풍광을 창조하는 창덕궁은 살짝 고개 숙인 미인의 옆모습처럼 사모의 정을 자아낸다.

서울 창덕궁 부용정에서 내다본 사정기 비각 언저리의 눈 내린 풍경. [컬처북스 제공]

창덕궁에 연모의 정을 품은 사진작가 배병우(60) 서울예술대학 교수는 10여 년 세월을 그 제 모습 드러내기에 바쳤다. 비가 오면 비가 내리는 대로, 눈이 쌓이면 눈에 파묻힌 대로, 꽃이 피면 꽃이 지천인 대로, 그들을 품어 안은 창덕궁의 속살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렇게 찍은 사진 중 180점을 골라 펴낸 『창덕궁: 배병우 사진집』(컬처북스)은 마음으로 보는 창덕궁이다. 사진집에 해설을 쓴 건축사가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는 “창덕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기보다 창덕궁에서 우리가 보고 느껴야 할 진면목을 보여주려 했다”고 배병우 작가의 ‘사진으로 쓴 창덕궁 론’을 설명했다. “건축과 자연은 일체가 되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일체가 되게” 했기에 정경(情景)이 합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36.5㎝ 큼직한 지면에 펼쳐지는 창덕궁은 때로 그 속으로 보는 이를 빨아들일 듯 고혹적이다. 꿈틀 하늘로 오를 것만 같은 애련정 뒤 숲의 소나무, 불끈한 남성미가 장엄한 영화당 남쪽 마당의 느티나무, 후드득 청춘 송가를 부르는 연경당 주변에 핀 꽃 등 창덕궁은 배병우 작가의 손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02-3141-6798.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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