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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저 구경 아니하고 이 가을 어찌 날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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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단풍 곱기로 이름난 전국의 산은 심한 홍역을 치른다. 내장산 입구인 호남고속도로 정읍 나들목은 주말마다 극심한 정체를 겪고, 설악산 백담계곡 입구에선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한두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예사다.

단풍철 설악산 주전골에 몰려든 인파를 보고 한 산악인은 "단풍잎보다 사람이 더 많네"라며 고개를 저었다. 34개 산악회의 연합체인 한국등산중앙연합회(www.sanak114.co.kr)로부터 전국의 단풍 명산을 추천받았다.

그나마 인파가 적게 몰리는 곳 중에서 지역.시기를 고려해 네 군데를 골랐다. 그렇다고 호젓한 단풍놀이는 장담 못한다.

단풍놀이의 재미 중 하나가 사람 구경이란 얘기도 있다.

손민호 기자

*** 단풍은 이 곳

(1) 강원 동해 두타산 - 어디서 이만한 계곡을 찾으랴

두타산 입구 무릉계곡은 최고의 단풍계곡이라는 찬사가 따라다닌다. 삼화사 매표소에서 용추폭포까지 1시간30분 동안 이어지는 단풍은 규모나 때깔에서 설악산과 지리산의 그 어느 유명 계곡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산행을 욕심내지 않고, 단풍놀이에 초점을 맞춘다면 무릉계곡은 훌륭한 선택이다.

두타산 산행도 그리 벅찬 건 아니다. 기암괴석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쉬이 범접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막상 산에 들어서면 그렇지도 않다. 해발 1355m로 꽤 높은 산이지만 산행 시작점도 해발 500m를 넘는다. 두타산성까지 이어지는 깔딱고개만 넘어서면 이후 산행은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권할 코스는 아니다. 매표소에서 두타산 정상에 올랐다 박달령을 따라 내려오는 산행은 모두 8시간. 체력이 약하다면 진작에 포기하는 게 낫다. 산 이름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10월 중순께 절정 예상.

▶가는 길=동해고속도로 종점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2㎞쯤 간 뒤, 무릉계곡 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5㎞쯤 가면 무릉계곡 주차장이다.

(2) 경기 가평 명지산 - 40분짜리 신선 여행

경기도의 명산. 본래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해발 1468m) 정상은 군사지역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돼, 명지산이 실질적인 경기도 최고봉(해발 1267m) 역할을 하고 있다. 산행도 그리 어렵지 않다. 명지폭포에서 명지산 능선까지 30분만 고생하면 된다. 명지폭포까지는 계곡길이 이어지고, 나머지 길은 대부분 평탄한 능선이다. 전체 산행도 쉬엄쉬엄 5시간이면 족하다.

사실 명지산은 사시사철 좋다. 봄엔 철쭉으로 유명하고, 여름엔 산 초입의 계곡 물놀이가 좋고, 겨울엔 눈이 많이 내린다. 그러나 가장 압권은 역시 가을이다. 이른바 '명지 단풍 능선'이 있다. 명지산 정상에서 명지 2봉(해발 1250m)까지의 완만한 능선. 40분 거리의 산행이다. 이 능선이 좋은 이유는 단풍나무가 많기도 하지만,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능선이기 때문이다. 탁 트인 시야 아래로 온통 붉게 물든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다. 10월 셋째주 절정 예상.

▶가는 길=산행 시작점인 익근리 계곡 입구 주차장은 가평역에서 18㎞ 거리다. 역 바로 앞에서 버스가 다닌다. 서울 출발이라면 기차를 타고 다녀오는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3) 경북 봉화 청량산 - 색동옷 입은 바위산의 손짓

산악인들이 가위 선계(仙界)의 풍광이라 일컫는다. 기괴한 모양의 돌산이 바위 병풍처럼 늘어선 아래로 단풍의 붉은 기운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고, 그 복판에 천년 고찰 청량사가 똬리를 틀 듯 자리를 잡고 있다. 무슨 산수화가 연상되는 광경이다. 특히 천길 절벽 중간에 걸터앉은 듯한 불교 도량 응진전은 단연 청량산 풍광의 백미로 꼽힌다.

청량산 정산이라고 해봐야 해발 870m에 불과하지만, 숱한 전설이 산자락 곳곳에 숨어 있다. 청량사는 신라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김생굴은 신라의 명필 김생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퇴계 이황, 공민왕도 청량산 하면 언급되는 인물이다. 그래서 문화유산 답사가들이 자주 찾는다. 산행은 의외로 4~5시간이면 족하다. 밖에서 보기엔 험한 돌산이지만 바위를 끼고 산길이 잘 나 있다. 10월 셋째주 절정 예상.

▶가는 길=봉화는 예부터 오지 중 오지였다. 그래서 봉화 청량산은 산에 드는 시간만 따져도 한참 된다. 중앙고속도로 영주 나들목에서 나와 36번 국도로 20분이면 봉화. 봉화에서 918번 지방도로로 한시간 이상 산길을 달려야 산행 시작점인 광석나루에 다다른다.

(4) 전북 순창 강천산 - 구름다리 건너니 꿈 속의 풍경

호남의 대표적인 단풍 명소. 단풍나무가 유독 많아 때깔이 화려하다. 근처 백암산.내장산과 함께 아기손처럼 조그만 단풍잎으로 유명하다. 산행 코스도 꽤 재미있다는 평이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고, 계곡과 능선 모두를 탈 수 있다. 초보를 위한 코스와 산 좀 탄다는 이들을 위한 코스가 따로 있다.

그렇다고 그리 호락호락한 산행은 아니다. 강천사까지 이어지는 30분간의 단풍 계곡길은 무난하지만 강천사에서 강천산 능선까지의 50분 코스는 무척 가파르다.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초보 코스는 대체로 무난하다. 산성산까지 가는 길은 금성산성을 끼고 가는 길이다. 산성산 근처에 바위 지대가 있어 초보자에겐 위험할 수도 있다. 강천사 옆에 그 유명한 높이 50m, 길이 76m의 구름다리가 있다. 미어터지는 내장산의 대체 여정으로도 좋다. 해발 583m. 11월 초순 절정 예상.

▶가는 길=순창 시내에서 버스로 20분. 산행은 옥거리 매표소에서 시작한다. 순창은 88고속도로 순창 나들목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서울에서 4시간30분 거리. 서울 출발이라면 당일 여정은 다소 빡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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