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서 항생제 내성균 서로 옮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4면

어린이집에서 교사와 어린이가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균을 서로 옮기는 사례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에 따라 어린이집이나 영·유아 보육시설에 대한 위생 관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커졌다.

서울여대 생물학부 이연희(사진) 교수팀은 서울과 경기도 소재 어린이집 세 곳의 어린이 68명과 교사 8명 등 76명에 대한 항생제 내성균 유무와 교차 감염 여부를 3년간 조사 분석했다. 조사 대상자들의 분변을 수거해 대장균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13종류의 시판 항생제 중 어떤 항생제에 내성을 지녔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43명의 어린이와 6명의 교사 등 49명(64%)에게서 한 가지 이상의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갖고 있는 균이 검출됐다. 그중 어린이 30명과 교사 4명 등 34명은 세 가지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수퍼 박테리아’에 감염돼 있었다. 이 중에는 5종류의 이상의 항생제에도 끄떡없는 종류도 있었다. 심지어 어린이 세 명은 9가지의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초수퍼 박테리아’를 가지고 있었다. 수퍼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상처나 질병에 항생제를 써도 잘 듣지 않는다.

이런 내성균은 교사와 어린이 간에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옮겨 다니고 있어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교사 A씨(여)는 교통사고로 다량의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2007년 세 가지 항생제(노르플록사신·시프로플록사신·날리딕스산)에 내성을 보이는 대장균이 발견됐다. 그해 그 어린이집 어린이들에게서는 같은 내성을 갖는 대장균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4세 어린이에게서 교사 A씨와 같은 내성을 갖는 대장균이 발견됐다. 더구나 독한 항생제인 젠타마이신에 내성을 갖는 균도 새로 검출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듬해 검사에서 4세 어린이가 감염된 젠타마이신 내성 대장균이 이번에는 교사 A씨에게서도 나타났다. 교사→어린이→교사 순으로 항생제 내성균이 옮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어린이집 교사 B씨(여)와 C씨(여)의 경우 항생제 내성을 전염시키는 유전자 세트(인테그론)를 어린이들에게 감염시키기도 했었다.

서너 가지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수퍼 박테리아의 현미경 사진.

국제 학계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애완견 사이에 이런 항생제 내성균이 서로 옮아간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된 환자는 격리해 치료한다. 한국에서는 삼성의료원이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인식도는 높지 않다.

이연희 교수는 “항생제 내성균을 보유하고 있는 어른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직접 접촉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운영하는 항생제내성균주은행에는 각종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1만2000여 종류의 균주가 있어 항생제 개발 때 약효 시험 등에 활용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