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5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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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광덕 스님은 묵묵히 듣고 앉았더니 내가 집에서 가출했다는 얘기를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십시다. 한번 만나는 보십시오. 만나보고 그 사람이 어머니를 따라가면 어머니 자식이고, 다시 우리 절로 돌아온다면 부처님 자식이니 그 뒤에 다시는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런 사정은 나중에 듣고 알게 되었는데, 차라리 절로 다시 돌아갈 걸 하는 후회도 있었지만 내가 시정으로 돌아가 작가가 되어 버린 결말은 그야말로 팔자 소관이다. 어머니는 먼저 나를 데리고 국제시장으로 가서 사복을 사 입혔다. 아마도 승복을 그대로 입혀 두었다가는 내가 다시 절집으로 돌아갈까 염려했던 듯싶다. 부산진역 앞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한식당에 들어갔는데 내가 비빔밥을 시키자 웅이 학생에게 한턱을 내야 한다며 불고기를 시켰던 생각이 난다. 절에서는 냄새만 맡아도 느끼하더니 불판 가녘으로 흘러내린 육수가 너무나 맛있어서 웅이와 다투어 가며 먹었다.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다가 곤하게 잠든 어머니의 전 같지 않은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승강구에 나아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가끔씩 철로의 연결점에 쇠바퀴가 걸리는 규칙적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느 고장의 강이던가 철교가 나타났다. 땅 위를 달리며 철로에 쇠바퀴가 걸리는 소리는 '타카다 타, 타카다 타'하는 소리의 연속이다. 철교를 지날 때에는 밑이 터져서 그런지 소리가 '왈그랑 탕, 왈그랑 탕' 하면서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요란해지고 눈앞에서는 서로 격자로 어긋난 철근들이 바람소리와 함께 휙휙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가 철교는 금방 끝나버리고 다시 땅 위를 달리게 된다. 그 소리의 변화는 너무도 뚜렷하다.

왈그랑 탕, 왈그랑 탕, 왈그랑 탕… 타카다 타, 타카다 타, 타카다 타….

마치 내가 철교 아래로 뛰어내린 뒤처럼 그것은 죽음을 닮았거나, 아니면 전생과 후생을 가르는 것만 같다.

나는 어려서 교회의 주일학교에 잠깐 나갔고 이미 중학생 때부터는 누나들과 달리 고분고분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아마 독서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나는 차츰 아무런 종교도 갖지 않게 되었고 그 무엇도 믿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그 점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와는 어쩐지 인연이 있어서 대학도 그쪽 학교를 나오게 되고, 내 인생의 주요한 전환점이 오면 그쪽 동네와의 관계가 생겨나게 된다. 외국인이 종교가 뭐냐고 내게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먼저 나는 '무종교'라고 대답하고 나서 그렇지만 불교에는 '흥미'가 있다고 대답한다.

나는 다시 흑석동 시장의 그 다락방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에 틀어박혀 끼적였던 단편소설이 생각난다. 제목을 우화(羽化)라고 붙였는데 고치 속에 들어 잠자던 애벌레가 껍질을 찢고 나와 날개를 휘저어 날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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