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밑도끝도 없는 '뭉칫돈' 의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빛은행 불법 대출 외압 의혹 사건 수사가 한창인 가운데 1996년 15대 총선을 전후해 거액의 뭉칫돈이 정치권으로 유입됐다는 또다른 의혹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검 중앙수사부가 경부고속철 로비 사건을 수사하던 중 자금 흐름을 캐기 위한 계좌추적 과정에서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 총선대책위 부위원장이던 황명수(黃明秀)전 의원의 아들 예금통장에 거액의 뭉칫돈이 입.출금된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자금 규모가 수백억원대고, 안기부 계좌에서 나왔으며, 현 야당 의원들에게 전달됐다는 등의 '속보' 가 계속 나돌고 있다.

아직은 사실 관계가 분명치 않은 만큼 누구의 옳고 그름을 따질 때는 아니다. 다만 합법성 여부를 떠나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고 정치권에 회오리 바람을 일으킬 게 분명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현재 드러난 대로라면 자금 흐름으로 보아 검은 손들의 검은 돈 거래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정부패.비리 척결 차원에서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고 위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여야를 불문하고 엄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뭉칫돈 의혹이 불거진 배경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검찰 수사가 순수한 부패 척결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법 대출 외압 의혹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맞불작전일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하필 박주선(朴柱宣)전 대통령 법무비서관과 최수병(崔洙秉)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 외압 의혹 사건 관련 중요 인사의 소환 조사 당일에 뭉칫돈 의혹 사건이 불거진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박지원(朴智元)전 장관의 소환 조사를 며칠 앞둔 시점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는 주장이다.

경부고속철 로비 사건이 벌써 몇달 전 일이고 구속기소된 관련 피고인에 대해 1심 선고까지 끝난 마당에 이제 와서 사건 전모도 아닌 부분부분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도 석연치 않다.

또 검찰의 강력한 반대 속에 야당이 특검제 도입을 주장하는 데 대한 야당 탄압용이라고 한나라당은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는 모두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검찰권이 독립하지 못하고 정치권에 휘둘려온 자업자득이다. 미묘한 시기에 검찰이 왜 자꾸만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구설에 올라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공신력 회복을 위해 검찰은 외압 의혹이든, 뭉칫돈 의혹이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밝히는 방법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뭉칫돈 사건의 경우 또다른 의혹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수사에서 드러난 돈의 규모와 출처.소비처만이라도 하루빨리 가감없이 밝히고 수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