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투시경] 수난 당하는 '눈물의 예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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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구약성서 중의 예레미야서(書)는 흔히 '눈물의 예언자' 로 불리는 예레미야의 행적과 예언들을 모은 글이다.

거기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유다왕국 말년 요시아 왕 때에 태어나 이미 젊은 시절에 예언자로 소명(召命)을 받았다.

그 뒤 시드기야왕 때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함락되자 이집트로 망명하려는 동족들을 말리러 갔다가 오히려 그들에 의해 이집트로 끌려가 거기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레미야서는 유다왕국의 최후와 사로잡혀간 왕 여호야긴의 후일담으로 끝나지만, 일설에는 이집트로 끌려간 예레미야가 거기서 동족들의 손에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가 일생 적대(敵對)자들로부터 받아온 미움과 박해에다 예루살렘 함락으로 증폭된 민족주의 감정을 근거로 한 추측일 듯 싶다.

예레미야가 젊어서 본 예언적인 환상 중에 하나는 '그 면이 북(北)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 끓는 가마솥이었다.

북쪽에서 내려올 원수들의 상징으로, 하나님을 배신한 민족에게 내려질 심판(審判)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그 상징이 바빌로니아로 구체화되었을 때 시드기야왕과 국민들에게 저항하지 말기를 충고하였다.

하지만 당시에 인기 있던 예언자는 오히려 바빌론의 멸망과 제1차 '포수(捕囚)' 때 그리로 끌려간 자들의 귀환, 그리고 빼앗긴 성전(聖殿)보물들의 회수를 장담하는 '희망의(성경에서는 거짓) 예언자' 들이었다.

거기다가 그들은 다른 주변민족과 연결하여 바빌로니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민족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방금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고 있는 바빌로니아에 항복을 권하는 예레미야는 한낱 반역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레미야에 대한 민족주의 세력의 감정은 그를 대하는 바빌로니아의 태도에서 역(逆)으로 읽을 수 있다.

바빌로니아왕 느브갓네살은 예루살렘 원정군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해 예레미야를 특별하게 보살피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집트로 망명하느니보다 유대 땅에 남아 바빌로니아의 동정(同情)에 운명을 맡기라고 권유하러온 예레미야를 납치하다시피 자신들의 망명지로 끌고 간 이들이 그를 어떻게 대우했을까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예레미야서가 요즘 와서 새로운 느낌으로 읽히는 것은 예언의 형식으로 드러난 예레미야의 민족감정 및 국제정세 분석과 그 시대 사람들의 대응이 시사하는 바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그 면이 북쪽에서 기울어진' 끓는 가마솥이나 생존과 독립을 위협하는 바빌로니아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민족애로 다져진 이런 화해와 협력의 시대에, 그리고 이처럼 진보된 세계화 시대에 그따위 가마솥이나 바빌로니아가 있을 리 만무하다면 더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서둘러 진행되는 남북관계나 갈수록 확산되는 반미(反美)감정을 보며 끓는 가마솥과 비빌로니아를 양의적(兩意的)으로 느낀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저 옛 유다왕국에서처럼 우리에게는 희망의 예언자가 너무 많다. 북쪽의 가마솥은 완고한 수구(守舊)반동세력의 과민이나 기우가 조작한 환상이며, 현대의 바빌로니아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해방자(解放者) 고레스(키루스 대왕)로만 기능할 것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이대로만 가면 갈라진 땅은 그림같이 이어지고 나뉜 형제는 우애로 다시 얼싸안게 되며, 주변 강대국은 사심 없는 갈채로 그 진행을 지켜보리라고 우긴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그들의 예언이 어그러진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끔찍하다. 바로 예레미야서 다음에 이어지는 예레미야 애가(哀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문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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