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선'이 아름다운 선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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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보름간 지구촌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시드니 올림픽이 이틀 후면 폐막된다.

새 천년 들어 처음인 이번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숱한 인간 드라마를 연출해 냈다. 우리는 각국 선수들의 투혼과 열정, 도전정신이 어우러진 명승부를 지켜보면서 때론 손에 땀을 쥐고, 때론 안타까워하며, 때론 눈물 솟는 감동을 맛보기도 했다.

전날 경기에서 입은 갈비뼈와 손가락 부상으로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상태에서 진통제에 의지해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8㎏급 결승전에 나선 김인섭. 극도의 통증으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그는 끝까지 불굴의 투혼을 잃지 않았다.

약점을 집중적으로 노린 상대 선수의 공격에 밀려 결국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지만 누가 그걸 금보다 못하다 하겠는가.

가정주부로 6년 만에 다시 활을 잡은 김수녕. 그는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으로 후배들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줌으로써 양궁 한국의 견인차가 됐다. 열여덟살 '총잡이' 강초현의 진짜 아름다움은 패기와 도전정신이었다.

그뿐인가. 개막 열흘 전 교통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슬픔을 딛고 여자 1백m 허들에서 0초03 차이로 은메달을 차지한 글로리 앨로지(나이지리아), 5m 앞을 보지 못하는 중증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여자 1천5백m 준결승에 진출한 말러 러년(미국), 생활이 어려워 4년 동안 신었던 운동화를 신고 42.195㎞를 완주한 여자 마라토너 시리반 케타봉(라오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악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

케타봉이 신었던 낡은 운동화는 남자 1백m에서 우승한 모리스 그린(미국)의 '황금신발' 보다 더 값지게 느껴지지 않는가.

성화대의 불꽃은 꺼져도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선남선녀들의 진한 감동은 우리 가슴에 남을 것이다. 금메달이 아니면 어떤가.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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