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석유 냄새 감추고 개도국 대변 목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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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일관되게 국제유가조정이라는 원론적 임무를 수행해 왔으나 최근 고유가 문제를 계기로 정치.경제적 입지를 강화하자는게 변신의 요체다.

27일 부터 열리는 정상회담은 이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는게 국제 정치.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유럽연합 등 이른바 서방선진국들의 일방적인 원유증산이나 감산요구에 제목소리를 내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치를 찾겠다는 것이다.

◇ OPEC의 변신 노력〓OPEC는 이번 회담에서 단순 석유 카르텔에서 벗어나 개도국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위상 강화를 노리고 있다.

OPEC 의장국으로서 이번 회담을 주최하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세상의 변혁을 통해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 이라며 "개도국 국민들의 신성한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울 것" 이라고 말했다.

OPEC 정상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도국들의 빈곤.외채 해결 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차베스 대통령은 이번 회담 개최를 계기로 제3세계의 지도자로 부상하려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번 회담에서 OPEC내 반서방 세력을 규합하고 OPEC 회원국이 아닌 나라들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넓혀 나간다는 계산을 깔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회담에 비회원국인 러시아.멕시코.노르웨이.오만.앙골라 등 5개국을 옵서버로 초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번 회담에 이어 다음달에는 중미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과의 정상회담도 개최할 계획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OPEC와 협력 관계는 현재로서 충분하며 회원국으로 가입할 의사는 없다" 고 밝혀 차베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한편 움베르토 베르티 전 OPEC의장은 "그의 고유가 정책은 결국 산유국이 아닌 개도국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준다는 의미에서 제3세계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구호와 모순된다" 며 강하게 비난했다.

◇ 감산 논란〓OPEC내 강경파들은 미국의 비축유 방출로 유가가 하락한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11월 열리는 OPEC회의에서 원유를 더 생산하기는 커녕 생산량을 줄이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는 곧 OPEC가 11월 회의에서 추가 증산을 결정할지가 불투명하다는 얘기고 고유가추세는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유가가 배럴당 28달러를 넘으면 증산하고 22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감산하도록 돼 있는 유가밴드제를 수정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유가밴드제의 한계를 28달러 보다 높은 가격으로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추가 증산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밖에 OPEC는 서방 선진7개국(G7)재무장관 회담에서 유류세를 내리지 않기로 합의한데 대해서도 강력히 비난했다.

릴와누 루크만 OPEC 사무총장은 "G7의 이번 결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며 "OPEC는 지난 10일 80만배럴 증산을 결정함으로써 해야할 일을 했으니 서방측도 세금 인하로 협조해 달라" 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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