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계·정부 대화, 국민위한 의료체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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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어제 의료계의 폐.파업과 관련해 사실상 공식 사과하고, 의료계가 이를 받아들여 의정(醫政)대화가 곧 시작될 전망이다.

국민을 고통 속에 빠뜨린 의료파행이 석달 만에 정상을 되찾게 됐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답답한 국내 현실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의정대화가 진정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구축에 시동을 거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최선정(崔善政)보건복지부장관은 어제 의약분업 시행과정의 잘못, 사회변화를 따르지 못한 의료제도 운영과 수가문제 등에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또 의사의 진료권과 약사의 조제권을 들어 약사법 재개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의료계도 전제조건을 다 들어주어야 대화하겠다는 등 종전 고집을 꺾고 대화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의료계, 특히 젊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의견표출 방식엔 결코 찬성할 수 없지만 거기엔 비전이 없는 절박한 현실인식과 의료개혁에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의료보장제도의 정착을 위해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낮은 수가를 강요한 탓에 그들대로 고통이 컸다.

과잉진료와 의료보험 부당청구 등 비양심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고,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 때문에 질좋은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곁을 장기간 떠난 건 결코 잘한 일이 아니었다.

의료계는 실추된 국민 신뢰를 속히 회복해야 한다. 환자가 의사를 믿고 의지하고 따르지 않아 초래할 악영향은 심각하다. 가짜약이라도 의사를 믿고 복용하면 상당한 약효를 보이는 플라시보(placebo)효과가 이를 방증한다.

차제에 의료계는 의사-환자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의사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친절한 서비스로 환자들의 믿음을 사야 할 것이다.

의료사고 등에서 흔히 보는 '가재는 게편' 식의 태도를 버리고 선의의 '동료 감시' (peer review)로 의료사고를 줄여야 한다.

한편 정부는 의약분업을 물거품으로 돌려선 안된다. 이 시점에서 임의분업은 도리어 더 큰 혼란을 부를 뿐이다.

미흡한 점을 보완하되, 완전 의약분업의 틀을 갖춰 시행해야 한다. 필요하면 약사법도 손질하고 국민에게 의약분업 필요성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의약품 오.남용의 심각성을 적극 알려야 한다. 대신 동네약국 살리기 등 약사들을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의정대화는 국민을 위한 새 보건의료체계의 틀을 짜는 데서부터 비롯돼야 한다. 정부는 준비 안된 의약분업으로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긴 과오를 뼈깎는 심정으로 반성하고 이번엔 제대로 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 의료계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올바른 의료체계를 마련하는 데 성의를 다하고, 잘못된 내부관행도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의료파행은 이제 더 있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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