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화하는 의료계·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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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가 24일 의료계에 사실상 사과와 유감 표명을 함으로써 마침내 의정(醫政)이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정부가 전격적으로 의료계의 대화 선결조건을 대폭 수용하게 된 것은 지난 2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중앙일보 창간 35주년 인터뷰에서 "의약분업을 다소 안이하게 판단했다" 고 발언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중앙일보 9월 22일자 1, 3면).

그러나 약사법 재개정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의료계가 파업을 풀기까지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많다.

이번 정부의 태도변화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이런 식으로 내줄 것 같으면 왜 질질 끌어 환자들만 힘들게 만들었느냐" 고 비판하면서 "의료계에 너무 양보해 앞으로 의료개혁이 의사 위주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고 지적했다.

◇ 의료계 요구 거의 수용=난 22일 밤 의료계 비상공동대표 10인소위원회는 대화의 전제조건을 완화하면서 새로운 선결조건을 내세웠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과 또는 해명해야 하고, 사과하되 '그러나' 라는 표현을 쓰면서 변명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았다.

의료계는 장관 사과에 담아야 할 내용을 적시한 문건을 복지부로 보냈고 이틀 후 최선정(崔善政)복지부 장관의 유감 표명이 나온 것이다.

정부가 내부적으로 이런 방침을 정한 것은 지난 6일(중앙일보 9월 7일자 1면). 그러자 崔장관은 7일 "의료제도의 문제가 누적된 이유가 정부에만 있느냐. 의료계도 한 축이다" 면서 정책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4일에는 달랐다. 의료계 책임은 언급도 안했으며 의료보험의 저수가.의료제도 문제점 방치.의사 공급과잉 등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게 의료계 폐업.파업이라고 했다.

건강연대 허윤정 건강네트워크 실장은 "의료개혁이라는 첫 단추를 이런 식으로 끼우면 의보 수가만 계속 올라가고 정부는 제대로 된 개혁을 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비판했다.

◇ 약사법 재개정이 난관=공의(레지던트)들은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파업을 풀지 않겠다" 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약사들의 대체조제를 지금보다 더 엄격히 제한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려 하지만 의료계는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약사회 원희목 총무는 "복지부의 24일 발표 내용은 사실상의 항복이며 약사들은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 이라면서 "27일 대의원총회에서 강력한 투쟁방안을 강구하겠다" 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의료계와 약계, 시민단체의 의견을 어떤 식으로 절충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성식.장정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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