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후배들아, 그리고 동국아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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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아공 전지훈련을 마친 축구 국가대표팀이 2차 전훈지인 스페인에 입성했다. 18일 오후 11시30분(한국시간)에는 말라가에서 핀란드를 상대로 평가전을 치른다. 2002년 3월에도 히딩크 감독이 스페인에서 핀란드와 평가전을 치른 바 있다. 황선홍은 2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그 후 한국은 상승 가도를 달리며 4강 신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스페인 전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후배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킬러가 없다.” 2002년 3월. 스페인 라망가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대표팀이 가장 많이 듣던 지적입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경기를 마무리 지을(Kill the game) 킬러’를 애타게 찾고 있었습니다. ‘대형 공격수’에 대한 갈증을 호소해 온 허정무 감독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 2002팀은 미국 골드컵에서의 부진 탓에 히딩크 감독이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스페인 카르타헤나에서 열렸던 핀란드와 평가전입니다. 월드컵 조별예선 첫 번째 상대인 폴란드를 염두에 둔 경기였습니다. 솔직히 경기 전만 하더라도 핀란드가 그렇게 어려운 상대일 줄 몰랐습니다. 신체 조건이 좋은 북유럽 스타일 축구에 전반 내내 고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후반 들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고 교체 출전했던 저는 종료 직전 두 골을 기록했습니다. 7경기 만의 승리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날 골로 유럽팀을 상대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때부터 팀은 확실히 상승세를 탔고 대표팀을 향한 시선도 우려에서 기대로 바뀌어 갔습니다.

어쩌면 지금 대표팀에 필요한 것이 이런 변곡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남아공에서 치러진 경기를 다 보지 못해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고지대와 새로운 공인구 적응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반드시 살아 남겠다’는 무한 경쟁 분위기 속에서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핀란드전은 기회입니다. 좋은 경기를 펼친다면 팀 분위기도 바뀌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자신을 조급하게 하고 팀에도 이롭지 않으니 편안하게 경기에 임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대표팀에 대한 시선은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포커스는 6월에 맞춰져야 하니까요.

이동국, 포항 스틸러스의 후배이자 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동국이에게는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다만 “주변의 평판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라”는 말만 하고 싶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 이후 저는 팬들로부터 죽일 놈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대회 직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무릎을 다쳐 구경만 했습니다. 제가 2002년 월드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것처럼 동국이도 해낼 것이라 믿습니다.

이동국 등 골에 대한 부담을 짊어진 공격수들에게는 감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반짝 활약을 하는 선수보다 감독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할 줄 아는 선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감독이 원하는 것이 골인지, 아니면 전술적인 움직임인지 등을 파악해 팀에 녹아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002년 핀란드전의 골과 승리가 폴란드전으로 이어졌듯이 이번 맞대결이 월드컵 첫 경기 상대인 그리스전을 대비한 좋은 모의고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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