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인터뷰] 펜싱 첫 금 따낸 김영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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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영호를 21일 오후 펜싱경기장 입구에서 만났다.

그는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고 있었다.온 몸의 근육이 뭉쳐 걷기도 힘들 정도라고 했다. 얼굴에 미소를 띠며 느릿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이웃집 아저씨처럼 이야기하는 이 사내가 진정 0.01초를 다투는 칼싸움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한 검객이란 말인가.

- 집에는 전화했나.

"아내는 '수고했다' 고 하고 논산의 어머니는 '고맙다' 고 하셨다. 세살배기 아들 동수는 '아빠, 최고야. 보고 싶어. 빨리 와' 했다'. 대전 집과 고향 논산에서 잔치가 벌어졌다고 한다'. "

- 이번 금메달의 의미는.

"내가 한국 펜싱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워낙 드라마같은 승부가 TV로 생중계돼 펜싱 인기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 결승전 14 - 11에서 14 - 14 동점까지 갔는데.

"빨리 끝내려고 서두르다 실점했다. 14 - 13에서 공격이 실패, 역습당했을 때는 아찔했다. 마지막에는 무조건 선제 공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밀고 들어갔는데 맞아떨어졌다."

- 가장 힘들었던 경기는.

"16강전에서 맞붙은 미국 선수가 공격해 들어오는 스타일이라 고전했다. 15 - 14로 겨우 이겼다'. 준결승도 힘들었는데 여기서 이기면 70%는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 펜싱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는데.

"1998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단체 4강전에서 내가 마지막 선수로 나가 프랑스에 역전패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고 내 한계를 절감했다. 다시는 칼을 잡지 않으려고 했지만 설욕해야겠기에 다시 시작했다."

- 펜싱 운동량은 어떤가.

"목숨걸고 결투하던데서 유래한 운동이니 오죽하겠는가. 도복에, 메탈 재킷에 마스크까지 쓰고 하니 엄청나게 힘이 든다. 순간 순간 상대 움직임을 예상해 머리를 써야 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경기 도중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진다'. "

- 펜싱이 귀족 스포츠라는데.

"돈이 많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YMCA에 가면 장비를 무료로 빌려준다. 펜싱을 하면 눈도 좋아진다. 내 시력이 왼쪽 1.0, 오른쪽 1.5다. 아줌마들 살빼는 데도 펜싱이 최고다."

(이때 관광객들이 김영호를 알아보고 기념촬영을 요청했다. 자신을 알아본 게 신기했는지 김영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금메달 따면 은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다음 올림픽까지 계속해보라고 한다. 은퇴하면 지도자가 돼 경험과 기술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싶다."

- 펜싱 선수 출신인 부인(김영아)의 내조는.

"1년에 4~5개월 이상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데도 이해해준다. 연애만 10년을 해 눈빛만 봐도 기분을 안다. 경기가 안풀릴 때에는 기술적인 조언도 해준다. 아내를 잘 얻은 것 같다."

시드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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