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의 길] 2. 군사적 신뢰 구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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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군사적 신뢰 구축에 북한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 단계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군사전문가들은 주목한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는 "6.15 남북공동선언에 '평화' 가 빠져있어 북한이 군사적 신뢰 구축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간다" 며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가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남만권 국방연구원 연구위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사력을 체제유지의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어 북한으로서는 군사적 신뢰 구축 준비가 안된 상태" 라고 우려하면서 북측의 태도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대결을 해소하겠다는 북한의 정책전환만 확고하다면 군사적 긴장도 해소될 수 있다" 며 "군사적인 신뢰 구축은 접근이 쉽고 부담이 적은 기초분야부터 다루는 방안이 적절하다" 고 지적했다.

군사적 신뢰 구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정부당국이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해 북한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지난 6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군은 이미 초보적인 위험한 군사행동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면서 "이제는 보다 확고한 '위험한 군사행동방지협약' (PDMA)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PDMA는 비무장지대에서 남북한 군이 우연히 만났을 때 욕설이나 총겨누기 등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협정이다.

25일로 예정된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계기로 군인사 교류를 확대하는 가운데 함정 및 공군기의 남북 상호방문을 시도해볼 만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김우상 연세대 교수는 "최근 남북관계의 추세로 보아 2003년말까지 군인사 교류와 함께 군사훈련 및 이동 규제.비무장지대(DMZ) 내 현장감시소 공동운영 등이 가능할 것" 이라면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군사적 신뢰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위해 "북한이 재래식 무기의 수출입을 신고하는 '유엔 재래식 무기 등록체제' 에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한편 유찬열 덕성여대 교수와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핵.화학무기.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면서 "현 단계에선 북한이 화학무기금지조약(CWC)과 미사일수출통제체제(MTCR)에 가입할지는 여전히 미지수" 라고 말했다.

尹교수는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문제를 페리 프로세스에 입각해 미국.일본과의 수교와 연계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밖에 서주석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단계에서 유엔사의 성격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전시 작전통제권과 유엔사의 법적 지위 등에 관한 구체적인 검토가 있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군사적 신뢰 구축에 대한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경협 및 국제사회 진출에 따른 실익(實益)을 위해 군사적 긴장 완화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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