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다시 묻는다] 2. 정책 기조 과연 옳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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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부도 위기를 넘어 미국식 신경제로 갈지 모른다고 들떴던 게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7월 대우사태의 처리 방향을 잘못 잡으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요즘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위원회의 실무자들이 자주 털어놓는 얘기다. 물론 정부의 공식 입장은 다르다.

"현 경제는 경기의 호흡조절과 막바지 구조조정.대외경제 여건의 악화 등으로 일시적인 조정국면에 처한 것이며, 구조개혁을 잘 마무리하면 재상승할 것" (이근경 재경부 차관보)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싸늘하기만 하다. 18일의 주가 폭락은 시장의 반응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문제의 본질은 부진한 개혁으로 누적된 불확실성" (이근모 굿모닝증권 전무)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장이 언제부터 정부의 개혁의지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일까.

외환위기의 상처를 떠안고 정권을 인수한 현 정부는 지난 1997년말 '국민의 정부, 이렇게 일하겠습니다' 라는 책자를 통해 "개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적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는 것" 을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98년 2분기 들어 정부는 금융긴축을 완화하면서 금리를 끌어내리는 정책을 썼고, 3분기부터는 재정투입을 통한 내수경기 부양책에 나섰다.

그러나 부실을 도려내는 근본 수술은 뒤로 미루거나 장기간에 걸쳐 분산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수술을 위해서는 체력보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64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했지만, 새 수술보다 기존 부실을 메우는 데 투입했다.

가령 98년 6월 5개 부실은행을 퇴출시켰지만 자산.부채 이전방식을 통해 퇴출은행의 부실을 우량 인수은행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정부의 저금리.경기부양책은 때마침 미국 경제의 호황과 맞물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전문가들도 당시 정부 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당시 저금리 정책으로 죽을 기업을 살려 후환을 남겼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었다" 고 밝혔다.

하지만 일단 체력보강에 성공한 99년 하반기 이후가 문제였다. 정부는 수술을 머뭇거리며 기존의 응급처방식 정책을 되풀이했다.

대우사태 처리가 대표적인 예.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겠다는 이유로 개인투자자들에게 대우채권의 95%까지 보장해주면서도, 공적자금을 아끼기 위해 모든 손실을 금융기관들에 떠넘겼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부실화된 투신.종금사에서 돈을 빼내가면서 채권.자금시장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도 침체로 접어들었다. 정부가 우려했던 금융시스템의 오작동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이른바 '시장 안정책' 을 쏟아냈다. 하이일드와 CBO(후순위채)펀드를 내놓았다가 약효가 없자 비과세펀드를 발매하는 식이었다.

이강원 LG투자증권 부사장은 "정부가 대우를 처리하겠다고 나설 때 이제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는가 싶었다" 며 "그러나 결과는 대우는 그대로 살려두면서 금융기관에 부실만 전가한 꼴이 됐다" 고 꼬집었다.

김광기.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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