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방한 불투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달라이라마의 방한이 불투명해져가는 가운데 초청 주체인 방한추진위원회가 서명운동추진 등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나서 진통이 예상된다.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추진중인 방한준비위원회가 지난 15일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는 성관 스님(상임집행위원장)의 표정은 문안의 내용처럼 굳어 있었다.

"최근 중국 관리들의 발언이 한국 국민들의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는 등 신중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이에 대응하는 한국정부의 태도 또한 매우 미온적이라고 판단되기에 위원회의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자 한다."

첫머리부터 한국 정부와 중국에 대한 불쾌감이 잔뜩 배어있다.

위원회는 중국측의 달라이라마 방한 반대입장을 "온당치 못한 일" 이라고 비판하고, 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실망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의 압력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해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아지고,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조롱을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고 경고한 뒤 "한국 정부의 정당한 외교주권 행사를 거듭 촉구한다" 고 못박았다.

방한추진위원회는 최근까지 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위해 신중하게 추진해왔다. 달라이라마의 방한이 정부차원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탓이다.

그러나 이날 회견은 위원회의 기존 태도와는 다른 강경한 입장표명이 아닐 수 없다.

위원회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더 이상 신중한 처사만으로 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상황 판단에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방한을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추진위를 강경입장으로 몰아넣은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8일 우다웨이(武大偉)주한 중국대사가 공식적으로 밝힌 경고성 입장표명이다.

우대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정책위원회' 에 참석해 "달라이라마가 한국에 오면 단교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양국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중국 대사관 텐바오전(田寶珍)부대사는 추진위를 공식 방문해 같은 입장을 직접 전달했다.

부대사는 "달라이라마는 종교인이 아니라 분열주의자이기에 방한을 반대한다" 고 딱 부러지게 통보했다.

추진위는 달라이라마를 '평화의 사도' '종교지도자' 라며, 그의 방한을 '순수한 종교적 교류' 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중국측은 달라이라마가 티벳의 자치와 궁극적인 독립을 추구하는 망명정부의 지도자이기에 명백히 정치인이며, 그의 활동이 결국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분열을 책동한다는 입장이다.

추진위는 그동안 달라이라마 망명정부와 계속 접촉해왔으며, 지난 6일에는 "달라이라마가 11월 16일 방한, 3차례의 대중강연을 가질 예정" 이라며 방한일정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진위의 일정발표 이틀 뒤인 8일 중국 대사관이 "방한불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추진위는 15일 기자회견 직후 중국대사관에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공개서한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전박대 당하고 돌아섰다.

급기야 외교통상부도 16일 반기문차관을 추진위에 보내 "11월중 방한은 어렵다" 는 입장을 전했다.

물론 추진위는 "언제까지 중국의 눈치만 보느냐. 예정대로 추진하겠다" 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추진위는 예정대로 19일 '방한준비위원회' 발족식을 갖는데 이어 20일 양국 정부에 달라이라마 방한을 허용하라고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가는 강경 드라이브를 고수할 예정이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