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체조 선수, 스노우보드로 종목 바꿀수 있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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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대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헬스코치우스개 질문 하나. 바보가 길을 갈 때 계속 ‘어?’ 했다가 잠시 후 ‘어~’ 했다가를 반복하면서 걸어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걸을 때 당연히 한 쪽 손이 뒤로 갔다 앞으로 오는데 바보는 손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는 줄 알고 그 때 마다 손이 어디갔나 싶어 ‘어?’ 했다가 다시 나타나니까 ‘어~’라고 한 것이란다. 이 바보는 책을 읽을 때도 왼쪽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는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긴단다.

바보 얘기를 꺼낸 것은 스노우보드를 탈 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고유감각기능(proprioception)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요즘 스키 시즌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예전과 달리 대부분의 스키장에서 스노우보드를 허용해 주고 있다. 속도감은 스키보다 덜 하지만 온 몸을 내던지는 짜릿함과 독특한 문화 때문에 매니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묶여 있는 두 발로 조절하다 보니 부상도 만만찮아 스노우보드를 배우려면 먼저 넘어지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당연한 코스가 되고 있다. 30초가 멀다하고 넘어지기 때문에 손과 발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질 않으면 보드는 커녕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고유감각기능이란 신체의 분절, 쉽게 말해 손과 발이 공간상에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바보가 길을 가면서 ‘어?’ ‘어~’를 반복한 이유도 바로 이 고유감각기능이 떨어진 때문이다. 바보는 물론 일반인들도 고유감각기능이 좋아야 하지만 손과 발의 협동 작업이 필수적인 스노우보드맨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래야 보드 중에 점프했다가 랜딩할 때 발의 위치를 잘 파악하여 눈 위에 안전하게 설 수 있게 된다.

고유감각기능이 중요한 다른 이유는 기술을 발휘할 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드를 할 때 정확한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관절은 물론 관절을 둘러싸고 있는 인대나 힘줄, 근육의 움직임이 중요한데 고유감각기능은 이러한 조직들이 움직일 때의 속도나 힘을 기억하고 있는 능력이다. 아무리 머릿속으로는 보드계의 슈퍼스타 숀 화이트처럼 멋진 에어나 고회전 3D 스핀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은 이런 고유감각기능이 뇌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절이나 관절주머니, 근육, 힘줄, 인대 등 움직이는 바로 그 조직에 고유하게 들어있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유명한 숀이라도 끊임없이 훈련을 반복하여 조직의 고유감각기능을 향상시켜 놓지 않으면 공중에서 하는 동작이 물속에서 하듯 화려하게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근육이나 인대의 힘과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 때문에 고유감각기능이 좋으면 민첩성이나 평형성 능력도 좋아진다. 따라서 순간적인 동작을 빨리 할 수 있게 됨은 물론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 또한 좋게 된다. 일반 선수들 가운데 고유감각기능이 뛰어난 종목이 체조다. 체조나 스노우보드나 착지 동작이 많기는 마찬가지이고 두 종목 모두 두 발을 동시에 착지해야만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많은 체조 선수들이 스노우보드 선수로 종목을 바꾸거나 흔하게 보드를 시작하기 전에 어릴 때 체조부터 배운다.

그러나 체조도 하지 않았고 뒤늦게 보드를 시작한 ‘헝거리보더’라면 미니 트램폴린 위에서 뛰거나 바닥에 반구가 달린 경사보드 위에 서 있거나 큰 짐볼 위에 앉아 있는 연습을 해 볼 것을 권한다. 고유감각기능을 좋게 하기 위한 다른 방법으로 스펀지 위나 볼풀 위를 걷거나 물렁물렁한 물체 위에 서 있는 동작도 있다. 그러나 그것마저 없다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네모난 나무판자 밑에 청소용 밀대의 막대기를 놓고 균형잡기를 하는 것은 어떤가.

올 겨울 스노우보드를 멋지게 타고 싶다면 보드를 타기 전에 넘어지는 연습, 안전하게 착지하는 연습과 함께 반드시 균형잡기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고유감각기능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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