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절약 정책에 정부만 솔선수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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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 청사가 너무 춥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안 나오셨나요?”(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여기 있습니다.”(강병규 행안부 제2차관)

“어제는 세종로 중앙청사를 갔는데 너무 추웠고, 청와대를 가도 똑같더군요. 과천도 너무 춥습니다. (웃으며) 좀 잘 봐주세요.”(윤 장관)

“겨울은 그나마 낫지요. 겨울에는 옷을 껴입으면 괜찮은데 여름은 더워서….”(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14일 오전 과천청사에서 위기관리대책회의가 열리기 앞서 장관들이 주고받은 말이다. 이때 바깥 기온은 영하 17도. 산자락에 둘러싸인 과천의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아침에는 장갑을 끼고 목도리로 얼굴까지 둘러싼 공무원들이 종종걸음으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들어와도 얼어붙은 몸은 쉽게 녹질 않는다. 지난 4일부터 실내 온도 상한선을 18도로 1도 낮췄기 때문이다.

청사를 관리하는 행안부 관계자는 “에너지 절약을 민간에까지 파급시키기 위해 실내온도를 낮췄다”며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입고 있는 내복을 내비치며 내복 입기를 권장하는 분위기에 따른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청사 밖 민간기업에 자리 잡은 외청의 공무원들은 사정이 낫다. 난방을 하는 주체가 민간이라 18도 기준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외청에 근무 중인 중앙부처의 한 사무관은 “업무 관계로 본청에 갈 때면 옷을 2~3겹 더 껴 입는다”며 “반대로 본청에서 외청으로 근무를 나오면 부러움에 한마디씩 건넨다”고 전했다.

그래서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도권의 한 세무서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내복과 윗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어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며 “사우나에서 몸을 담그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과천의 한 경제부처 공무원도 “1층 복도에 면한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외풍이 심해 덜덜 떨고 있다”며 “일하는 데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털어놨다.

행안부도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익명을 원한 행안부 관계자는 “현재의 청사 실내온도는 직원들이 추위를 느낄 수 있는 온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한파는 잠시지만 에너지 절약은 장기 과제”라고 실내온도 조절 가능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행안부는 공무원들에게 내복·조끼 등의 착용을 권고하는 행동지침을 내려보낸 바 있다.

에너지 절약에 공무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민간의 참여가 보다 활발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관이 차지하는 에너지 소비량은 민간에 비하면 극히 적다. 일부 서비스업체가 에너지 절약 동참을 선언했지만, 이를 따르려는 움직임은 많지 않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내가 먼저’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매일같이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이유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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