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두석 '추석 성묘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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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시오 리 산길을 걸어

풍수설을 신봉하는 늙은 농부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의 산소를 찾아간다

어린 시절에는 으름이나 머루를 따는 재미에

한나절이 걸리는 산행이

지루한 줄 몰랐었다

직각으로 굽은 허리 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 할머니

무덤 속에 누워서도

허리를 펴고 있지 못할 것 같은

할머니의 산소는 명당이란다

산소 발치의 인장바위는

나랏일을 좌우할 도장이란다

- 최두석(45) '추석 성묘길에' 중

어찌 이 나라 백성들 복을 받지 않으랴, 풍요와 축복의 명절 한가위에 고향길 오가느라 사람의 산, 사람의 강 이루는구나. 여름 장마에 쑥대머리가 된 조상님네의 산소에 벌초를 하고 큰절을 올리기 위해 아들의 손을 잡고 오르는 아버지들. 나랏일을 좌우할 도장바위가 아니라도 선산은 언제나 명당이어야 한다. 차례 지내고 성묘하는 자손들에게 내려주시는 복도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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