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영진 '몽당연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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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 어릴 때 필통 속에는

몽당연필들이 있었다

새끼손가락 만한

몽당연필로 쓰고 지우고

공부를 했다

흰 종이 한 장도

마음놓고 못 써보고

강냉이죽 한 그릇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

무명 바지 가랭이가 다 찢어지고

맨발에 닳아 구멍난

검정 고무신을 끌고 학교를 다녔지만

부끄러운 줄 몰랐다

몽당연필을 쓰던

그 마음을 잃어버렸다

- 김영진(56) '몽당연필' 중

한 자루의 새 연필이 보배같던 때가 있었다. 몽당연필에 깍지를 끼워 침을 묻혀가며 '가가거겨..' 를 쓰'고, 구멍난 고무신을 끌고 학교를 다니'던 소년은 자라서 시인이 되어 그날의 가난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되돌아 본다.

이 나라 어린이들의 꿈과 슬기를 심고 키워온 '새벗' 을 읽던 독자가 발행인이 되어 지령 5백호를 맞는 큰 보람을 이룬 것도 바로 몽당연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경하하고 경하할 일이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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