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 필통 속에는
몽당연필들이 있었다
새끼손가락 만한
몽당연필로 쓰고 지우고
공부를 했다
흰 종이 한 장도
마음놓고 못 써보고
강냉이죽 한 그릇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
무명 바지 가랭이가 다 찢어지고
맨발에 닳아 구멍난
검정 고무신을 끌고 학교를 다녔지만
부끄러운 줄 몰랐다
몽당연필을 쓰던
그 마음을 잃어버렸다
- 김영진(56) '몽당연필' 중
한 자루의 새 연필이 보배같던 때가 있었다. 몽당연필에 깍지를 끼워 침을 묻혀가며 '가가거겨..' 를 쓰'고, 구멍난 고무신을 끌고 학교를 다니'던 소년은 자라서 시인이 되어 그날의 가난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되돌아 본다.
이 나라 어린이들의 꿈과 슬기를 심고 키워온 '새벗' 을 읽던 독자가 발행인이 되어 지령 5백호를 맞는 큰 보람을 이룬 것도 바로 몽당연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경하하고 경하할 일이다.
이근배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