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끌려다니는 장관급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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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제 끝난 제2차 남북 장관급 회담은 솔직히 말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고, 군사적 긴장완화.신뢰구축면에서도 성과

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경협관련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경의선 복원 실무위를 이달 중 개최하며, 이산가족 교환방문이나 교차관광에 합의한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회담이 전반적으로 북한측 페이스대로 진행된 결과 우리 국민 여론이 희망해 온 사안들에는 진척이 없었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게 됐다.

정부측은 '기술적 문제' 라며 사소한 일인양 말하지만 우리 대표단은 구체적인 일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평양으로 출발했다. 교통편도 북한 주장에 맞추어 또다시 판문점 아닌 항공편을 택해야 했다.

북한측이 '단고기(개고기)식당으로 가자' 고 정하면 가야 했다. 대표단은 그제 '내일 주요 인사와 만날 일정이 있다' 는 북한측 통보를 받고 어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만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빗나갔다.

왜 이런 파행이 빚어지는가. 기본적으로 외교관례를 자주 벗어나는 북한측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회담을 위해서라도 일방적인 양보나 '양해' 만 거듭할 게 아니라 우리측 입장도 당당히 개진해 바로잡았어야 했다. 모양새부터 끌려다니는 판에 제대로 된 합의를 도출해내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수석대표로 회담에 임한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평양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도 거론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적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 군사적 신뢰조치 분야에서 성과가 없는 것은 6.15선언이라는 '첫 단추' 에서 기인한다.

이산가족과 비전향 장기수는 선언문에 못박았지만 국군포로 등은 언급하지 않았고, 평화체제 문제도 문구에 없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빠져나갈 구멍' 이 생긴 것이다.

북한이 안그래도 '국군포로는 없다' 고 하고 군사문제는 미국과 논의하고 싶어하는 판에 웬만한 협상력과 각오가 아니고서는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게 돼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장관급 회담은 모양새든 내용이든 '원칙' 을 보다 중시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길게 보면 남북간 거리를 좁히는 지름길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 원칙과 입장이 합의문구에 최대한 반영돼야 한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문제들에 대해 '합의문에는 빠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 돼 있다' 는 식의 변명을 일삼다가는 여론의 불신만 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도 한국내 여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음 장관급 회담에서는 어느 한 쪽도 끌려다닌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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