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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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은봉(1953~ )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부분

맵디매운 두부두루치기 백반을 좋아하

던 여자가 있었다.

(중략)

한때는 자랑스럽게 고문진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여자,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장독대 같은 여자

두부두루치기 같은 여자

맵고 짠 여자

가 있었다 어쩌다 내 품에 안기면 푸드득 잠들던 여자가 있었다.

신살구를 잘도 먹어치우던, 지금은 된장찌개 곧잘 끓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색바랜 여자?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여자? 그 여자가 애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련하고 슬프고 코스모스 꽃잎에 이슬이 맺히듯 가냘픈 감수성에 온몸을 떨었던 여자, 그 여자가 '아내'라는 이름으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시금털털한 조강지처가 되었다. 애인은 늙지 않아도 아내는 이처럼 늙는다는 말일까.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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