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초소병의 동화과정 그린 '…구역 JS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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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시작부터 한 치의 느슨함 없이, 스태프의 명단이 오르는 순간까지 화면에 오감(五感)을 몰입토록 하는 영화가 말은 쉬워도 흔치 않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는 영화 제작단계부터 이래저래 조명을 많이 받았다.

남북한의 분단 문제를 다룬 데다 3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 8억원을 들여 만든 판문점과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세트 등 다양한 화젯거리를 뿌렸다.

이 때문에 시사회장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이들의 얼굴엔 기대와 함께 "과연 얼마나 제대로 만들었나 보자" 란 표정이 섞여 있었다.

엔딩 타이틀이 오르자 장내는 적잖이 술렁거렸고 조금 뒤 박수가 터져 나왔다.

1백5분 동안 숨죽이며 지켜본 관객들은 "오락성과 작품성으로 무장한 근래 보기드문 수작" 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았다.

비무장지대 수색 중 지뢰를 밟아 대열에서 낙오한 이수혁 병장(이병헌). 어쩔 줄 몰라하며 낙담하고 있는 그 앞에 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이 나타난다.

처음엔 얼떨결에 서로 총을 겨누지만 상대가 지뢰를 밟고 있다는 걸 안 오중사는 총부리를 거두고 발 밑의 지뢰를 제거해 준다.

생명을 구해주고도 대단치 않은 듯 무심히 돌아서는 오중사에게 신뢰를 느낀 이병장은 이후 편지를 실에 묶어 돌팔매로 상대편에 던지는 등 인간적으로 접근한다.

이병장은 급기야 '건너서는 안될 다리' 라고 믿어 왔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초소를 찾는다.

'공동경비구역 JSA' 는 이처럼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근무하는 남북초소병들이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혹은 무시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맏형같은 오중사, 호기심 많은 속사수 이수혁, 그림에 소질 있는 북한군 전사 정우진(신하균), 수혁을 따라나선 남성식(김태우)일병. 애인 사진을 나눠보며 웃고, 닭싸움으로 몸을 부대끼다가 서로 구두를 닦아주는 등 팽팽한 긴장과는 거리가 먼 이들의 모습이 정겹기도, 눈물겹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 대립하는 군인이 아니라 그냥 젊은 친구들이었다. 거기서 분단은 비극이 아니라 아이러니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꿈을 용납하지 않는다. 해맑은 웃음 소리는 건조한 총성에 묻혀버린다.

중립국 감시단은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려 스위스계 혼혈 소피(이영애)소령을 파견한다.

미스터리를 추적하던 소피 소령은 끝까지 상대를 보호하려는 한반도 젊은이들의 우정을 통해 아버지 나라의 슬픈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민감한 남북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다룬 점에서 감독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추리적 긴장과 박진감 있는 전투장면이 편하게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를 배경 음악으로 깐 채 뿜어나오는 총소리의 합창은 영화의 절창이라고 할 만하다.

다음 달 9일 개봉.

신용호 기자

남북한 군인이 우정을 나누는 게 고교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애초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었으나 29일 재심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를 받았다.

흥행을 걱정하던 제작사로서는 일단 한숨을 돌린 셈. 첫 심의에서 고교생의 관람권을 빼앗으려 한 등급심의위원들의 안목을 관객 스스로 판단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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