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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한국 디자인의 자존심 ‘태극 못 쓰니 태극부채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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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 08면

어찌 보면 잡동사니 박물관이다. 서울 홍익대 부근 와우공원 앞에 자리한 근현대디자인박물관에는 고종 임금의 사진부터 김기림의 시집,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텔레비전까지 놓여 있었다. 이 박물관을 짓고 내용물을 채워 넣은 박암종(54) 관장은 선문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다. 박물관에 디스플레이해 둔 것만 1600점. 엽서류 등을 포함하면 수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사진·엽서·인형·책·포스터·가전·국기·상표 등 수집품이 그 누구보다 다양하다. 20년간 수집을 했음에도 유물 딜러들이 “도대체 무얼 모으십니까?”라고 물어올 정도다.

이경희 기자의 수집가 이야기 - 근현대디자인박물관 박암종 관장

“사진 모으는 사람하고도 경쟁하고 책을 모으는 이와도 경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디자인으로 봤을 땐 모두 중요한 유물들이거든요. 다양하게 경쟁하며 모아 하나하나 퀄리티가 높아요.” 당초 그의 전공은 편집디자인이었다. 월간 ‘광장’ 아트디렉터, 월간 ‘디자인’ 객원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1991년 『금세기 위대한 30인의 디자이너』란 책을 만들었다. 가로·세로 각 4㎝에 60쪽짜리 미니북.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책이어서 화제가 됐다. 그걸 계기로 고서 분야에서 알아주는 컬렉터인 화봉문고 여승구 사장이 그를 한국 애서가 클럽으로 끌어들였다.

1 일제시대 상표. 박암종 교수의 첫 수집품인 『한중일 상표 도안집』에 들어 있던 상표 중 하나다. 한복 입은 여인을 넣어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했다.2 39박가분39 vs 39촌가분39. 박가분은 1915년 현 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이 운영하던 포목점에서 내놓은 화장품. 1908년 한국상표령이 공포된 이후 1920년 상표등록을 한 1호 화장품이기도 하다. 박가분이 인기를 끌자 비슷한 디자인에 朴과 유사한 村자를 쓴 ‘짝퉁’ 촌가분이 나왔다.3 조선풍속인형. 1920~30년대에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판매되던 관광 기념품이다. 여러 인형 중 경인년 새해를 맞아 호랑이 탄 산신령을 소개한다. 매끈하게 다듬으려 하지 않고 대강 쳐서 만든 듯한 기법이 특징이다.

“여 사장님이 1920~30년대 스크랩북인 5권짜리 『한중일 상표 도안집』을 넘겨주셨어요. 그걸로 한국 디자인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당시에만 해도 학계에선 한국의 디자인은 1950~60년대쯤 태동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스크랩북 안에는 한국의 독자적인 상표 디자인이 담겨 있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월간 ‘디자인’지에 ‘한국 디자인 100년사’를 연재했다. 그로부터 우리나라 디자인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의 상표는 일장기·욱일승천기가 반영돼 있고 생산지가 그려져 있어요. 중국은 동자와 정원의 꽃이 어우러진 디자인이 많아요. 한국의 상표엔 한복 입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등장해 한국산임을 강조했어요. 태극 마크를 넣지 못하니 대신 태극선을 그려 넣기도 했죠. 일제 치하에서 무기를 들고 싸울 순 없지만 상표 하나에서도 그런 주체성을 표현한 겁니다.”

그는 한국 디자인의 역사를 개화기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엔 ‘한국 디자인사’ 과목을 처음으로 정식 개설했다. 놀랍게도 이전까지 우리나라 대학에선 서구 디자인사만 강의되어 왔단다. 한국 디자인사를 앞장서서 연구하다 보니 그와 관련된 사료들을 모으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보통 서구에서 들어온 것이라 생각해요. 물론 서구에서 디자인이란 개념이 정립되고 체계화되긴 했죠. 그러나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시대 흐름에 맞는 디자인 산물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 걸 잘 정리해 보여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2008년에 박물관을 열었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7개 전시실이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다. 디자인이란 틀로 모으긴 했지만 다른 시점으로 연구해도 무수히 재미있는 결과들이 쏟아져 나올 듯한 근·현대 자료들로 가득하다. 여담이지만 “다음 일정이 빠듯해 사진만 얼른 찍고 가겠다”던 사진기자가 유물 삼매경에 빠져 두 시간이 넘도록 머물렀다.

“박물관을 열어 보니 수집은 그저 초기 단계에 불과해요. 박물관을 살리려면 그걸 진열하고 전시하고 연구하고 기획해서 특별전을 열고 각종 문화상품을 만들고 책도 써야 해요. 박물관이란 결국 문화의 전진기지이자 발전소 역할을 해야 하거든요.”
관장에 교수직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게다가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 회장이다. 지난해 말 인왕 알파인 클럽을 창립해 회장직을 하나 더 맡았다. 세미나와 출판·전시까지 염두에 둔 문화적인 산악회란다.

“제가 인왕초등학교를 나왔어요. 동네 이름이 문화촌인데, 그 얼마나 문화적입니까. 그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았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무(武)보다는 문(文)을 중시하던 민족입니다. 남의 나라를 강탈하는 게 아니라 문화로 영향을 주는 나라가 되어야죠. 박물관이 요소 요소에 많이 생겨야 합니다.”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면 블로그 ‘돌쇠공주 문화 다이어리(blog.joins.com/zang2ya)’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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