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기 왕위전] 이창호-서봉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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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줄것 주면서 상대 옭아매는 李9단

제5보 (86~104)〓86의 후수까지 좌상 백집은 여러수 두었으나 20집이 채 안된다. 검토실에선 "이러다간 말라죽겠다" 고 한다.

87과 89 두수가 좋았다. 이창호9단이 두터운 형세를 마무리해 나가는 솜씨는 평범하지만 비범하다.

89에 대해 '참고도1' 처럼 백1, 3으로 저항하는 것은 흑8까지 망해버린다. 그래서 90은 당연한데 徐9단은 이 수를 두는 데도 2분여를 고심한다. 집이 모자라 허덕이는 것은 빚쟁이에게 쫓기는 것보다 힘들다고들 말한다.

집이 부족하면 뭔가 변화를 일으켜 국면 전환을 꾀해야 하는데 李왕위는 통 기회를 주지 않는다. 徐9단은 그래서 숨이 막히고 아픈 사람처럼 속으로 앓고 있다.

93, 95를 사석(捨石)으로 해 101까지 싸바른 솜씨도 극찬을 받았다. 흑이 큰 이득을 취한 것은 없다. 다만 줄 것을 주면서 상대로 하여금 옴쭉달싹 못하게 했을 뿐이다.

101을 본 徐9단은 거의 노타임으로 102에 쳐들어갔다.

바늘 끝만한 틈을 노린 이 분노의 돌격에 李왕위는 반사적으로 103 후퇴한다. '참고도2' 처럼 막는 것은 백6까지. 5에 지키지 않고 잡으러가는 강수가 있겠지만 李왕위는 지금 그런 모험을 전혀 하고 싶지 않다. 그 틈을 타 徐9단은 재차 104. 그는 여기서 뼈를 묻으려 한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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