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화해와 군사훈련은 별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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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을지 포커스 렌즈'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비난성명 발표 후 한층 움츠러든 형태로 실시되고 있다.

안그래도 정부는 올해 을지훈련을 전투대비에서 재난예방 성격으로 바꾸어 진행한다는 방침이었는데, 지난 19일 조평통이 "훈련을 강행하면 북남관계가 6.15선언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고 경고하자 내용을 더욱 약화시킨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안보환경에 부합할 수 있도록 치르겠다" 는 정부 당국자의 말에 이해할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중요한 행사인 을지 포커스 렌즈 훈련을 축소.변경할 만큼 지난 두 달 사이에 우리의 안보환경이 실질적으로 바뀌었는지는 극히 의문이다.

북한은 비난성명을 발표하기보다는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군사위원회 설치부터 제의했어야 했다.

군사훈련은 전쟁위협이나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실시하는 것이다. 특히 을지훈련은 전쟁 초기 정부의 위기관리 및 한.미 연합 위기관리능력 배양이 목적이다. 북한은 거꾸로 '북침 위협' 을 내세우는데, 그렇다면 상호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의 장(場)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가 아니겠는가.

남북간 화해.협력과 군사훈련은 한마디로 말해 별개다. 화해협력시대를 맞아 북한군이 군사훈련을 중단했다는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미 국무부도 그제 '북한군 역시 올 여름에 군사훈련을 실시해 왔다' 고 지적했다. '무력도발 불용(不容)' 은 정부 대북정책의 한 원칙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6년 전부터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을 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의 환태평양훈련(RIMPAC)에도 북한을 배려해 '조용히' 참가하고 돌아왔다. 북한이 비난할 때마다 훈련내용이 졸아든다면 한.미 연합으로 치러지는 연합전시증원훈련이나 독수리훈련도 그렇게 만들 작정인지 묻고 싶다. 나아가 한.미 연합방위체제와 한.미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남북의 군사적 긴장과 대치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논의나 가시적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측 군사훈련부터 줄이거나 축소하는 것은 아무래도 위태롭다. 군인이 존재하는 한 훈련은 필수적이다.

북한도 군사훈련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 서둘러 군사공동위원회 같은 대화창구를 제안해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일이다. 핵심문제를 방치한 채 '분위기' 에나 신경쓰고 상대방의 비난성명 한마디에 찔끔한대서야 어떻게 튼튼한 안보를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 안보를 위한 군사훈련이라면 당당하게 진행하고 북측에도 이를 납득시켜야 옳다. 튼튼한 안보태세 덕분에 역설적으로 요즘의 남북 화해시대도 가능했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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