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지상감상] 4. 촛불 프로젝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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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백남준의 '촛불 프로젝션'은 매우 시적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 카메라에 잡힌 촛불의 움직임을 삼색의 프로젝터를 통해 벽에 투사하는 작업이다.

빨강, 노랑, 파랑의 삼색으로 겹쳐 보이는 촛불의 이미지는 분배기를 통해 벽면 가득히 비쳐지게 된다.

그 작동의 원리가 너무도 쉽고 간단해서 우리가 흔히 비디오 아트라고 할 때 생각하는 복잡하고도 정교한 기술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그저 촛불에 카메라를 비추기만 해서 만든 작품인 것이다.

'촛불 프로젝션' 은 백남준의 예의 비디오 조각과는 달리 가볍고 경쾌하며, 투명하며 찬란하다.

그것이 시적이라 할 때는, 뭔가 우리들 앞에 있으나 그것이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결코 물건으로 자신의 존재를 강변하지 않는, 마치 영혼의 그림자인양 자신을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는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촛불의 삶의 궤적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다다익선' 이 TV 문명의 실체를 바벨 탑과 같은 물신성(物神性)으로 이야기한 것이라면, '촛불 프로젝션' 은 온전히 비물질의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촛불 프로젝션' 도 초가 다 타고나면 그만인 것처럼, '다다익선' 역시 전기코드만 빼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물체가 되고 만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TV 모니터가 주는 조각적 의미일까. 아니면 빛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비물질성일까. 오히려 물질의 언어는 죽음이고, 비물질의 언어는 생명력이다.

우리는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않다.

한마디로 비디오 아트는 전통적 미술개념을 넘어서고 확장시킨 점에 그 핵심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예술작품의 물질 개념을 영상이라는 비물질의 언어로 대체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자체가 비디오의 매체적 본질이라고 하겠다.

필자가 '촛불 프로젝션' 을 처음 본 것은 프랑크푸르트 미술관에서다. 그 곳에서는 천정이 높은 작은 방에 미술관 컬렉션으로 설치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촛불은 마치 선방(禪房)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고요한 사유의 움직임처럼 보인다.

그에 비해 호암갤러리의 촛불은 'TV 정원'과 함께 춤추는 듯한 언어와 몸짓으로 더욱 화려하게 와닿고 있다.

10월 29일까지 호암.로댕갤러리. 02-771-2381.

박신의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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