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기수 정치적 이용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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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다음달 2일 북한에 송환할 비전향장기수 62명의 명단을 어제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통보했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8.15 이산가족 방문일정.면회소 설치와 함께 지난 6월 말 남북적십자회담에서 구체적인 데까지 합의를 본 사안이다.

합의서대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성사된 만큼 장기수 송환은 당연한 후속절차며, 송환 즉시 적십자회담을 다시 열어 면회소 설치.운영 문제도 속히 결론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비전향장기수 송환이 인도적 측면이나 남북 화해시대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잘된 일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이들은 보통 이산가족과 달리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허물어 보려다 장기간 형을 살았다는 점에서 '정치성' 을 띠고 있다.

그러나 길게는 40여년을 갇혀 지낸데다 대부분 70, 80대 고령이기에 정치성보다는 인도적 차원에서 대우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6.15 공동선언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이번 송환 때도 7년 전 이인모(李仁模)씨 경우처럼 통일부장관이 발행한 방북증명서를 쥐어 보내는 편법이 동원될 것으로 보이지만 너무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북한이 이인모씨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6.15선언도 명시했듯 비전향장기수 문제는 어디까지나 '인도적' 차원인데 이를 국내정치.선전에 이용한다면 모처럼의 조치가 남북관계에 오히려 악재(惡材)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 스스로 송환 취지에 상응하는 성의와 조심성을 보여야 마땅하다.

국군포로.납북자.탈북자 등 국내 '특수 이산가족' 과의 형평성도 과제다.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는 판에 북한도 이들 문제를 더이상 부인하거나 외면해선 안된다.

어제까지 이산가족 상봉장 주변을 맴돌며 송환을 호소하던 납북자 가족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다들 보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음달 적십자회담에서는 우리 대표단이 이 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북한도 호응할 것을 촉구한다.

인도적인 문제로 파악한다면 해결책이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2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때 국군포로 등을 포함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남북 당국은 또 당초 합의대로 장기수 송환 즉시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운영 문제를 시급히 매듭지을 책임이 있다.

사흘간의 방문단 교환에서 드러난 엄청난 상봉 열망을 감안할 때 차제에 면회소뿐만 아니라 우편물 교환.통신 등 보다 다양한 수단들을 함께 논의하는 게 옳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계기로 남북간 화해.교류 분위기가 한 단계 도약하게끔 서로 배려하고 성의를 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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