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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주식(64) ‘가장 위험한 여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증시는 그 나라의 경제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어디 경제뿐이겠습니까. 정시 사회 문화 등이 모두 녹아 있는 곳이 증시입니다. 그래서 증시를 취재하다 보면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발굴하게 됩니다. 오늘 그 중 하나를 올립니다.

중국 사회의 한 단면을 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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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업계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으로 통하는 여성이 한 명 있습니다. 경제전문 잡지인 '차이징(財經)'의 주편(主編·우리의 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후수리(胡舒立)가 주인공입니다. 그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동안 차이징은 주식시장과 관련된 대형 비리를 잇따라 터트려 업계를 긴장시킵니다. '기금흑막(基金黑幕)'.'누가 이안커지(億案科技)를 조종하는가','인광샤(銀廣夏)함정' 등 폭로기사가 여러 명을 철창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뒤가 구린 놈들은 격주로 발행되는 차이징을 보면서 떨었겠지요.

무섭다고 할 밖에요.

2003년에는 '강요된 침묵'을 깨고 베이징을 덮친 전염병 '사스(SARS)'를 가장 먼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용기지요.

"차이징 잡지는 딱따구리와 같은 존재다. 우리는 영원히 나무를 쪼아댈 것이다. 이는 나무를 넘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다. 나무가 더 곧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후수리의 언론관입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후수리의 편집 방향 덕택에 차이징은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 권위의 경제잡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차이징=후수리'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차이징과 후수리는 한 몸이었지요.

그런 그가 2009년 11월 9일 차이징을 떠납니다. 이날 후수리는 차이징의 '오너(owner)'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1998년 창간이후 11년 동안 키워 온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회사와 결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날 사직서를 받은 사람이 바로 왕보밍(王波明)이었습니다.
왕보밍이 누구냐고요?

'13억 경제학'칼럼을 읽어 온 분이라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문화대혁명 시절 어머니를 잃어야 했던 그 소년, 서방 증시를 배우겠다며 뉴욕증권거래소에 나타났던 그 청년, 완셔우(萬壽)호텔회의에서 중국의 증시 설립 방안을 설명했던 바로 그 젊은이입니다. 여기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9873363 를 클릭해 연결되는 '색계'시리즈 칼럼을 읽으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호떡집에서 불이라도 난 듯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후수리와 왕보밍의 결별’, ‘후수리의 내막’,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만큼 후수리와 왕보밍의 결별은 언론게와 업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이죠.

왕보밍과 후수리, 그들은 또 어떤 인연일까요?

왕보밍과 후수리가 만난 것은 1989년 초입니다. 후수리는 당시 중화공상시보(中華工商時報)기자로 필명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쓴 '개혁은 낭만곡이 아니다'라는 글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그를 왕보밍이 눈여겨 보게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칼럼에 이어집니다.


우디한/無敵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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