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물고기를 제대로 잡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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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가로 가야지 산에 가서 나무에 오른다면 정신 온전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엉뚱한 짓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란 이런 사람을 나무라는 옛말이다.한편 우회생산(迂回生産)이란 말이 있다.곧바로 맨손으로 잡으려드는 것보다 먼저 낚싯대를 만들고 이를 이용하는 수순을 밟으면 더 많은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이치를 깨우치는 말이다.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이 시장에 유포된 지 오래지만 그룹 내에 수익성 있는 기업들이 버티고 있다는 점에서 대우그룹과는 다르다는 인식이 악성 루머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근래 현대건설은 자금압박으로 부도 직전에 몰리고 증시는 바닥권으로 곤두박질했다.

장기 외유 중이던 정몽헌(MH) 회장은 귀국 즉시 소떼를 몰고 방북 길에 올라 다수의 국민이 의아해 했다.그 결과 무엇을 얻었나.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개성에 관광 공업단지를 만들도록 허용했더니 MH회장이 "입이 찢어져" 반기며 돌아갔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수익성이 높은 사업인가.

여기서 연목구어와 우회생산의 차이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우리는 반짝하는 생각, 기발한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한다. 보통사람들의 평균적 머리회전에서 혁신이 나오지 않음을 안다.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물고기 잡는 방법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가를 알려면 잡힌 물고기가 많은 쪽을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북 사업이 그런 사업이던가.

우회생산의 장점은 여러 단계를 거쳐 생산수단을 만든 다음 바라는 것을 만드는 직접생산보다 더 많은 생산물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반면 우회생산은 생산기간이 길어 예비없이 시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정치.경제적으로 확대해석하면 남한기업의 대북 사업도 우회생산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긴 회임 기간, 사업의 불확실성, 북한체제에 독특한 추가경비, 시혜적으로 베풀어야 할 사업수익 분할 등을 고려한다면 대규모의 비용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기업들만이 대북 사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고합.통일그룹 등 자금력이 취약한 기업들이 대북 사업을 주도해 온 것은 어인 까닭인가.대북 사업과 재무구조 취약, 어느 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알기 어렵다.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도박해 왔는가.

불행하게도 현대건설과 상선은 물론 현대그룹이 송두리째 북한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지 모른다는 우려가 시장에 번졌다.정부와 채권은행단이 요구한 현대그룹의 3분법이 부실의 그룹전체 확산을 차단하는 방안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발표한 현대그룹의 자구방안 중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지분정리를 통한 자동차 계열분리는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그러나 연말까지 자산매각 등을 통해 1조5천여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방안의 시장신뢰 회복효과는 잠정적일 것이다.

이는 앞으로 부동산 매각, 자산담보부채권(ABS)발행, 해외미수채권 할인매각 등 약속이행이 지체될 경우 다시 시장불신이 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실한 국민경제발전을 바라는 국민치고 대우그룹 붕괴와 같은 메가톤급 충격의 재발을 즐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렇다고 충격이 두려워 해야 할 구조조정을 지연하다 자칫 충격의 증폭을 방조할 수 있다는 인식의 공감대도 넓다.

이 점 정부와 채권금융당국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어느 누구보다 현대문제의 해결 책임은 현대 대주주에게 있다.현대의 전 명예회장은 한창 시절 이룩한 전설적 일화를 많이 남긴 기업인이다.

최근 수년간에는 대북 사업을 통해 남북 화해의 길을 트는데 공헌이 큰 것도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그의 기업가로서의 판단능력에 의심가는 사례들(차세대 형제간 지분다툼, 일부 가신들의 득세 등)이 늘어나 과거의 영광에 금이 가고 있다.

잡일로 넋나간 어부에게 잡힐 고기는 없다.기업의 성패도 마찬가지일 게다.수익성에 철저해야 현대가 살아 남는다.정공법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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