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윤배 '대성동 마을을 가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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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군사분계선은 이미 구파발 지나 통일로를 달리면서

내 가슴에 그어지고 있었다

신의주를 향해 달리던 기관차였을까

초조한 세월을 달래며 기적을 울리지만

검붉은 녹만이 메아리로 돌아와

풍화에 눕고 있는 레일을 두드린다 그 챙챙한 소리가

술 취한 관광객, 재잘거리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한 풍경으로 팔린다

스스로의 슬픔을 팔아 슬픔을 키우는

비무장지대 저 긴장의 가시 침묵들

교목과 관목 사이를 뚫고 정찰로가 이어져 있다

강물소리가 들린다

- 김윤배(56) '대성동 마을을 가며' 중

섬이 아닌 섬이 있다. 비무장지대 인접한 대성동 마을..., 이제 지뢰밭도 걷히고 경의선이 내달리면 그 섬도 뭍이 되어 평화가 지저귈 것을. 이 시는 끊어져 녹슨 채 언제 이어질는지 모르는 철길을 두고 쓴 것이겠으나 열차가 달리는 소리를 미리 듣고 있는 지금, 그 기원이 새삼 가슴에 파고 든다.

내일이면 서울과 평양은 울음바다가 되겠지, 반세기 넘어 부둥켜안는 혈육들의 몸부림은 또 어쩔거나.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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