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개각 감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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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각이 있고 나면 정부.여당측은 으레 개혁성과 전문성을 살린 잘된 개각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야당은 기대 미흡이라고 혹평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개각이 잘 됐는지 못 됐는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과거 많은 개각처럼 이번 역시 자기네와는 상관없는 끗발 가진 일부사람들 '그들끼리의 잔치' 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 "일류 기용했나" 가장 중요

우리나라처럼 개각이 잦은 나라도 별로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인사의 기준이나 객관성이 모호한 나라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인사도 자주 하다 보면 노하우가 축적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어떻게 해야 성공한 인사가 되고, 어떻게 하면 실패한 인사가 되더라는 경험이 쌓일 만한데 세월이 가도 인사 노하우가 발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개각의 성공.실패 여부를 가늠하는 객관적 기준이란 있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개각이 잘 됐는지, 비교적 무난한지, 아니면 문제가 많은지 등을 따져보는 몇 가지 관점이나 요소는 그래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선 따져볼 일은 새 진용이 '일류(一流)' 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뭐니뭐니해도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다.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 정치고 경제고 문화고 크게 달라진다. 그런 중요한 대통령 주변은 국가경영을 가장 잘 할 것으로 믿어지는 일류들로 채워지고 일류들이 보필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대통령의 지근에 있는 비서.참모들은 더욱 그렇다. 2류.3류들이 대통령에게 입력하고 집행하는 인적(人的)구성이라면 그건 잘된 인사일 수 없다.

정권 입장에서도 나라의 엘리트층을 잡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대통령들은 흔히 사적(私的)관계에서 친분.신뢰감.충성심 때문에 '변방' 인물이나 2.3류를 기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인사는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만다.

분야별로 일류를 기용해야 해당분야가 그 인사를 수긍하고 기대를 걸고 정부를 신뢰하게도 된다. 해당분야에서 분명 2.3류로 지목되는 사람을 기용하면 그 분야의 사람들은 정부를 비웃고 그에게서 나오는 정책도 불신할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그들이 일류인가 하는 것은 개각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아닐 수 없고, 특히 오랜 야당생활로 인재풀이 비교적 협소한 DJ정부에서는 이 점이 더욱 중요하다.

다음으로 따져볼 일은 인사에서 책임문제가 제대로 반영됐는가 하는 점이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잘못한 사람.무능한 사람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인사의 원칙이다.

이런 책임원칙이 확립되지 않고는 정부의 기강도 서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받기도 어렵고, 정책 추진력이 나오기도 힘들다.

가령 금융대란.의료대란 같은 대란관계자, 각종 정책혼선 표류.불신 등의 당사자, 앞뒤의 말이 다르고 할 말 안 할 말을 분별 못한 일구이언(一口二言).구설관계자 이런 사람들이 어김없이 물러가야 그 개각은 잘된 개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편가르기 인사, 보은(報恩).보답용 인사가 없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무능해도 내편이니까 기용하고 유능해도 네편이니까 안된다는 인사가 돼선 안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과거에 신세를 졌으니까 공직기용으로 갚겠다는 보답용 인사도 물론 안될 일이다.

*** 책임원칙 제대로 지켜야

자, 이런 몇 가지 관점에서 이번 개각을 볼 때 어떤 평가가 나올까. 우선 도저히 '일류' 라고 보기는 어려운 인물들이 보이고 그런 사람들이 요소요소에 그대로 남아 있는 현상도 시정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정부 스스로는 이번 개각의 주안점을 개혁성에 두었다고 하지만 어느 자리 누구를 두고 개혁을 말하는지도 어리둥절하다. 새 사람보다는 이리저리 자리만 바꾸거나 이미 알 만큼 알려진 사람들이 또 들어와 전반적으로 신선감도 느끼기 어렵다.

무엇보다 책임원칙이 제대로 반영된 것 같지 않다. 경제팀은 바뀌긴 했지만 자리바꿈을 시킨 걸 보아서는 책임을 물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쇄신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엇갈리는 발언과 엉뚱한 발언으로 말썽이 난 통일팀도 그대로 눌러앉았다. 전반적으로 보아 왜 물러났으며, 왜 들어왔는지가 의아스러운 경우도 보여 인사의 기준을 읽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개각이 잦으면 정부가 일을 못한다고 걱정하는데 이번 개각이 과연 DJ정권의 마지막 개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문제는 '일' 이니까 새 팀은 '일' 로 자기들의 존재를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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