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통일내복 깁는 문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30m 남짓한 강폭을 사이에 두고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 일행을 저쪽에서 놀고 있는 북한 아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얘들아, 이쪽으로 와 같이 먹자" 했더니 아저씨들이나 배불리 잡수시라며 '주체적 체면' 을 차린다.

3년 전 7월 말 북한과 중국의 국경마을을 찾았을 때다. 절기는 삼복 염천인데 그 아이들은 우리가 60년대 체육복과 내복을 겸하며 겨울을 났던 두꺼운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 밤에 우리도 옷을 껴입어야 할 정도로 국경의 여름은 소슬했다.

한여름 백두산 천지 주변 양지녘. 덜 녹은 눈 사이로 땅에 찰싹 붙은 키 작은 화초들이 꽃들을 피우며 천상화원을 꾸미고 있다.

9월 들면 된서리 내리고 이내 눈보라 휘날려 인적이 끊길 산이기에 이 짧은 여름 식물들은 부지런히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씨 뿌려야 한다. 10월이면 북한에서는 백두산 입산이 통제된다.

한여름에 문인들이 겨울이 빨리 오고 유난히 추운 북한에 내복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 문인들은 지난달 8일 '북한동포 겨울내복 10만벌 보내기 운동본부' 를 세우고 지난 한달간 범문단적으로 상당액의 내복값을 모았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북한동포들에게 남쪽에서 보낸 따뜻한 마음을 입히자" 며 한 벌 1만원 단위로 전국민적인 모금운동을 이달 말까지 펼치게 된다. 02-313-1486.

우리 대부분은 내복 없이도 겨울을 난다. 잘 된 난방 덕분에 내복의 존재조차 모르는 도시의 젊은이들도 많다. 아랫목은 설설 끓어도 윗목에 떠놓은 물은 꽁꽁 어는 겨울, 뼛 속까지 시린 한기를 내복으로 감쌌었다.

취직해 첫 월급으로 사 부모님께 바친 게 내복이었고 명절 때 어른들에게 고맙고 따뜻한 마음을 대신해 드리는 게 20년 전까지 우리의 관례였다.

이제 그 세대들은 한겨울이 아니라 한여름 펑펑 과소비 되는 사무실의 냉방 아래서 간혹 그 추웠던 시절의 내복을 추억하고 있을는지.

북한에 턱없이 부족한 생필품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지난달 원불교 박청수 교무는 북한여성들에게 생리대로 쓰라며 정결한 기저귀 천을 보냈다.

같은 여성으로서 부끄럽지만 그들의 그곳 사정이 몹시 안쓰럽다는 말을 들었다며. '주체적 체면' 상 손 내밀 수 없는 북한동포들에게 이제 문인들이 원고지 한 칸 한 칸 채우는 간절한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이 맨살에 뿌듯이 전해지는 통일내복을 깁자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경철 문화부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