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특파원 현지 르포] 스타가 있는 축제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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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필라델피아의 거대한 실내경기장 퍼스트 유니언 센터. 사정을 모르는 관광객이 보면 유명한 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보울(Super Bowl)이 열린 듯하다.

수만 인파, 밴드의 경쾌한 노래와 연주, 그라운드 광고판처럼 늘어선 30여개 TV방송 로고, 올림픽 프레스센터 같은 대형 미디어 천막….

축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흐트러진 것처럼 자유스럽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반가워 껴안고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어떤 아버지와 딸은 춤추기에 바쁘다.

고향사람이 대통령후보가 된 덕분에 경기장 중앙에 자리잡은 텍사스주 대의원단. 카우보이 모자를 쓴 그들은 박수와 환호를 주도하는 치어 리더다.

공화당 전당대회는 이처럼 떠들썩한 한마당 잔치판이다. 그런데 그 자유분방함 속엔 자연스런 정치의 무서운 힘이 숨어 있다.

대형 스크린 3개가 장치된 초대형 연단엔 내빈석이 없다. 큰 무대에는 사회자나 연사만 홀로 서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부인 바버라.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였으며 대통령 후보의 부모인 이들은 2층 일반관람석에 조용히 앉아 있다.

그들의 대회장 입장을 알리는 안내방송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알아본 대의원 하나 둘이 시작한 박수는 어느덧 참석자 전체의 기립박수로 퍼져나갔다. 박수 소리엔 당원들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만약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나타났다면 박수의 열도(熱度)는 더했을 것이다.

중요 연사의 멋있는 연설은 대회장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공화당이 자랑하는 흑백의 스타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당원들은 박수 치고 환호했다. 기립박수는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연사들은 연설 원고를 거의 보지 않는다. 거물부터 보통사람까지 그저 청중을 바라보고 허공에 손을 흔들며 스크린에 가득 퍼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부시 후보를 치켜세우고 정권을 되찾자고 역설했다.

대회장 바깥에는 공화당을 향한 따가운 시선도 있다. 거액 헌금자와 주로 어울리는 부자들의 정당이며, 인종화합을 외치면서도 흑인 대의원은 5%가 안된다는 것이다.

또 군사력 재건에 목소리를 높이는 공화당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1일 필라델피아 시내 중심부에선 사형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으며 경찰은 최소한 90여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유례없는 단합속에서 8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꿈에 부풀어 있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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