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역사 200년만에 CD롬으로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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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백년간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미국 흑인 노예들의 잃어버린 역사가 한 역사학자의 끈질긴 연구로 햇빛을 보게 됐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31일 궨돌린 미들로 홀(71)이란 백인 여성 역사학자가 18~19세기 루이지애나주 설탕.목화농장에 팔려온 10만여 흑인 노예들의 슬픈 개인사를 한 장의 CD롬에 집대성 했다고 보도했다.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이 발간, 인터넷 서점을 통해 45달러에 판매되고 있는 이 CD롬에는 1730년 이전 노예거래 초기 루이지애나에 온 노예 3분의2의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예의 이름뿐 아니라 고향.건강상태.기술은 물론 품성과 반항심의 정도까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고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노예 소유주들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다.

마크 포스터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고조부가 8명(3명은 어린이), 증조부가 50명 노예를 소유하고 거래한 사실도 이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노예들의 비극적 삶은 앨릭스 헤일리가 쓴 '뿌리' 등 문학작품을 통해 여러번 형상화됐지만 구체적인 신상은 거의 드러난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백인들은 자기 조상들이 노예를 소유했던 과거를 감추려 했고, 흑인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캐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홀 박사는 1984년부터 노예에 관한 미공개 정보들을 수집하면서 16년간 루이지애나주 법원과 프랑스.스페인 정부 문서보존소를 뒤져 노예 거래에 관한 기록들을 수집했다.

새의 깃털 펜으로 쓴 흑인 노예들에 대한 거래 장부는 루이지애나 지방법원의 한 습기찬 지하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다른 지방법원의 기록은 흑인이나 백인 중 누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태우려 한 흔적이 있었다. 난로 옆 선반에 아무렇게나 쌓인 책더미에서 귀중한 자료가 나오기도 했다.

홀 박사가 흑인 노예들의 족적을 찾아나선 데는 흑인 운동가였던 아버지 허먼 미들로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16년간 자료를 검색하느라 결국 보정 안경을 쓰게 됐다. 홀 박사는 "이 데이터로 미국인들이 아프리카 노예들도 '인간' 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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