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장관급회담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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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소(最小)수준의 합의' 와 '다단계(多段階)적 접근' .30일 남북 장관급 회담은 두가지 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당초 관심을 끌었던 구체적인 분야별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할 분과위원회의 운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시기도 결론이 나지 않아 미지근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장관급 회담의 정례화 및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의 정상화, 남북화해를 위한 8.15행사에 합의함으로써 정상회담 후속조치의 길을 열었다.

기대치에 비하면 합의수준이 높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남북 정상간에 합의한 6.15 공동선언의 실천의지를 거듭 확인하고 본격 '대화시대' 에 들어선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남북한 외무장관이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국제무대에서의 상호협력에 합의한 것이나 북한이 다자간 안보.경협에 적극자세로 돌아선 것도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을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도 드러났듯이 공동선언의 실행방법을 둘러싼 이견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호적인 가운데서도 겹겹이 쌓인 입장차이가 하루아침에 좁혀지기는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우리측은 공동선언 4항, 즉 경협과 다방면적 교류.협력을 구체화하기 위한 당국간 창구를 확보하는데 일차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북측은 이 문제들은 민간교류를 통해서도 진행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공동선언 1-2항, 즉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통일방안 협의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실리' 와 '원칙' 의 배합 입장을 견지했다.

이번 회담에서 특히 아쉬운 대목은 평화정착 문제에 관한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공동선언에 이 문제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데 따른 귀결로 생각되지만, 북측이 행여 군사문제 협의는 주한미군 문제와 평화협정과 관련해 미국과 풀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미국에는 '일괄타결' 전략을, 우리측에는 '과제 세분화' 전략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정부당국의 예측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당국은 대화 지속의 자세를 분명히 함으로써 더이상 '제로섬(Zero-sum)적' 이 아닌 '윈윈(Win-Win)적' 관계라는 점을 내외에 천명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축대쌓기는 차근차근 기초부터 제대로 다져야 하는만큼 앞으로 거듭될 장관급 회담에 기대감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영구 북한문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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